새로 쓰는 노자 41 : 배움의 역설

by 김경윤

뛰어난 사람은 배움을 힘써 실천하고

어중간한 사람은 배움을 망설이고

못난 사람은 배움을 비웃습니다.

배움은 비웃음거리가 되기 십상입니다.

최고의 배움은 어리석어 보입니다.

밝은 길은 어두워 보이고

평탄한 길은 굽어 보이며

높은 삶은 낮아 보이고

순수한 삶은 더러워 보이며

착한 삶은 모자라 보이고

굳은 삶은 보잘것없어 보이고

참된 삶은 변질된 것처럼 보입니다.

큰 배움은 끝이 없고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지며

큰 소리는 소리가 나지 않고

큰 모양은 형체가 없어 보입니다.

어리석어 보이는 배움

잘 드러나지 않는 배움

뭐라 말할 수 없는 배움

그러한 배움만이 모든 것을 키우고 완성시킵니다.

위대한 배움이 별도로 있습니까? 그런 배움은 없습니다. 위대한 가르침이 따로 존재합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배고프면 밥 먹고, 졸리면 자고, 지치면 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힘써 해내는 것이 가르침과 배움의 내용입니다. 배고플 때 못 먹고, 졸린데 못 자고, 지치는데 못 쉬고,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못하는 것이 불행입니다. 그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르침과 배움이어야 하는데, 오히려 교육현장은 그 반대입니다. 교육현장이 가장 불행한 곳이라고 교사도 학생도 외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못해 먹겠다고 푸념하거나, 더 이상 못 다니겠다고 자퇴를 합니다.

삶은 학교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교 역시 삶의 연장입니다. 똑똑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잘 사는 아이를 키우는 것입니다. 공부를 끝마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제대로 시작하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것입니다. 완성형 인간이 아니라 이루어가는 인간이 필요합니다. 남을 따라가는 교육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에 맞춰서 성장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어리석어 보이지만, 드러나지 않지만, 뭐라 말할 수 없지만, 그 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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