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제왕(應帝王)
드디어 마지막 장에 도달했네요. 마지막 장의 제목이 ‘거울 같이 살아라’네요.
나는 거울 하면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나오는 거울이 떠올라요. 청동거울에 녹이 껴서 자신의 모습을 비출 수 없음을 슬퍼하며, 그 거울의 때를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고 다짐하는 윤동주의 결의가 잘 드러난 시였지요.
그러나 장자의 거울 이미지는 윤동주의 이미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불가의 선불교에 이미지와 흡사하지요. 다음을 보세요.
7-4
명예의 우상이 되지 말고,
꾀함의 중심이 되지 말며,
섬기는 관리가 되지 말며,
지혜의 주인이 되지 말라.
무궁을 체현하고 내가 없는 경지에 노닐라.
하늘에서 받은 본성을 다할 뿐,
앎을 나타내지 말고 비어 있을 뿐이다.
지인의 마음 씀은 거울과 같아서
보내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는다.
다만 변화에 응하되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외물(外物)을 극복하고 상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4줄은 ‘되지 말라’는 항목을 늘어놓습니다. 명예, 꾀함, 섬김, 지혜는 우리가 평소에 너무도 간절히 추구하는 바지요. 그런데 장자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거부되어야 할 것이 되네요. 우상, 중심, 관리, 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목숨을 내놓지요. 남들에게 섬김을 받는 우상, 세상의 중심, 모든 것을 총괄하는 관리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주인, 이 얼마나 멋진 상태입니까? 하지만 장자는 이것 또한 부정합니다. 아니, 되지 말라고 간곡히 당부하네요.
대신 ‘내가 없는 경지’에서 노닐고 ‘텅 빈 채’ 앎을 나타내지 말라고 말합니다. 도대체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요? 그래서 장자는 ‘거울’을 비유로 듭니다.
자, 한 번 생각해보세요. 거울이 스스로 형상을 만드나요? 아니지요. 거울을 형상을 되비출 뿐이지요. 그러면 거울은 거울이 비추어진 형상이 아름답다고 해서 간직하나요? 아니죠. 그러면 거울이 아니라 액자지요. 그러면 거울에 흉측한 형상이 비친다고 거울이 거부하나요? 그도 아니지요. 거울은 분별심이 없으니까요? 거울은 어떠한 것도 다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간직하지는 않지요. 오면 맞이하고 떠나면 배웅할 뿐이에요. 어디에도 머물지 않지요.
한편 거울에 불을 비춘다고 거울에 비춘 불이 뜨겁나요? 거울에 얼음을 비추면 거울에 비춘 얼음이 차갑나요? 거울은 타지도, 얼지도 않아요. 그래서 상함이 없지요.
그래서 장자는 거울에 대해 ;
“보내지도 않고 맞이하지도 않는다.
다만 변화에 응하되 마음에 두지 않는다.
그러므로 능히 외물(外物)을 극복하고 상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상태가 거울과 같다면 참자유를 누릴 수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작고하신 숭산스님께서 그의 제자에게 쓴 편지 한 통이 있어요. 거기에도 거울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해 보려고 해요.
“거울을 보며 ‘저게 누구야?’라고 말했다고 하였습니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이 있고, 또 당신의 실제 얼굴이 있습니다.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과 당신의 얼굴, 어느 것이 올바른 얼굴입니까? 이 두 얼굴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만약 당신이 ‘같다’고 말하면, 나는 당신의 빰을 때릴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아야!’하고 비명을 지르겠지만, 거울 속의 얼굴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당신이 ‘다르다.’고 답하면, 당신에게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태어나기 전, 당신의 얼굴은 공(空)입니다. 당신이 죽으면, 당신의 얼굴은 공(空)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의 얼굴은 공(空)입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얼굴도 공(空)입니다. 그러므로 거울에 비친 얼굴과 당신의 얼굴은 같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그것들은 같습니까, 아니면 다릅니까? 만약 당신이 ‘같다.’고 대답하여도, 당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다르다.’고 대답하여도, 당신의 본래면목을 알지 못한 것입니다. 무엇이 당신의 본래면목입니까?
먼 옛날, 어느 조사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선(善)도 생각하지 말고, 악(惡)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그러할 때, 어떤 것이 너의 본래면목인가?’ 이것은 유명한 공안입니다. 아무것도 만들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본래면목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모를 뿐인 마음으로 곧바로 나아가십시오.”
어떠세요? 장자와 숭산스님의 말씀이 공명(共鳴)하나요?
참다운 자유는 어떠한 지위나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지위나 상태를 거부하는 것이지요. 참다운 자유는 ‘나’ 속에 머물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없는 경지’에 도달해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자유를 누리겠다고 지식을 쌓고, 재산을 늘리고, 명예나 학식을 높이지 마세요. 그것은 적어도 장자가 말하는 자유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니까요. 차라리 자신의 마음을 청정무구하게 닦아 모든 것을 비추는 자가 되십시오.
아름다운 여인이 그대 앞에 있으면
화장을 고치고 몸매무시를 단장할 것입니다.
천진한 아이가 그대 앞에 있으면
마냥 좋아라 웃어댈 것입니다.
넥타이를 맨 아저씨는
넥타이를 고칠 것이고,
호랑이는 그대를 보면
놀라 달아날 것입니다.
그대가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대로 인해 세상은
좀 더 아름답고
자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대는 거울입니다.
마지막 열쇠를 얻으셨나요? 그러면 그대는 자유를 위한 모든 열쇠를 다 가진 셈입니다. 이제 그 열쇠를 이용하여 오묘한 비밀을 담고 있는 삶의 자물쇠를 열어보시지요.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그대를 응원합니다. 파이팅!
장자 Tip
1. 세상이 중심이 되려고, 높은 지위를 차지하려고, 많은 지식을 쌓으려고, 충분히 벌려고 애쓰지 마라.
2. 내가 없다고, 나는 모른다고 생각하라.
3. 삶을 열심히 살아가되, 마음에 담지 말아라.
4. 거울처럼 살아라. 거울을 비추기만 할 뿐 맞이하지도 보내지도 않는다. 상처 받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