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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08. 2020

2020 독서노트 : 김누리의 대한민국론

우리가 민주주의자가 아닌데 민주주의를 어떻게 하지? 하는 물음인 셈입니다. 얼마 전 이런 의미에서 한 신문에 「민주주의자 없는 민주주의」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습니다. 광화문에 모여서 목이 터져라 민주주의를 외친 사람이 집에 가서는 완전히 가부장적인 아버지요, 다음 날 학교에 가서는 아이들을 쥐 잡듯이 들볶는 권위주의적 교사요, 혹은 회사에 가서는 갑질을 일삼는 상사라면, 민주주의는 어디서 하지요? 다시 말하면 이 나라에서는 ‘광장 민주주의’와 ‘일상 민주주의’가 괴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직 충분히 민주주의자가 되지 못한 거지요. 일상 민주주의는 광장 민주주의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일상 민주주의를 실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31~2쪽)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누리라는 중앙대 독문학과 교수가 나와서 대한민국의 교육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리고 그 강의내용에 참석자뿐만 아니라 관중석에서 모두 환호할 때, 나는 조금 의아했다. 그들은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처럼 반응했기 때문이다. 김누리 교수가 제시하는 데이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아도 너무도 분명히 드러나는, 이전의 수많은 교육개혁가들이 주장했던, 이야기를 조금 선명하고 선동적으로 이야기한 것일 뿐이었다. (나 역시 김누리 교수와 유사한 주장과 논거를 조금 더 과격하게 나의 청소년 소설 《허균, 서울대 가다》에서 피력한 적이 있었다.)

그러면 관중들이 김누리 교수의 주장을 환호하는 이유를 다른 데에서 찾아야 했다. 촛불 혁명을 거치고 난 이후에야 들을 귀가 생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나?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하려고 구매한 책이 바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해냄, 2020)이었다. 책은 순식간에 읽혔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서 밝힌 바대로 강의의 모든 내용이 방송을 탄 것은 아니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은 잘려서 내보내졌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TV나 인터넷 방송만 보고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인 셈이다. 책은 방송에서 잘린 부분들을 복원하고, 거기에 내용을 더 강화하여 완결성을 높여 놓았다. 


책은 우리가 정치적 민주화에 있어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성취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 민주주의, 경제 민주주의, 문화 민주주의 등 일상의 영역에서 왜 야만적인 상태에 놓여있는지에 대해 역사적, 국제적, 사회문화적 논거를 들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 아니라 수구와 보수의 과두제적 통치지배에 불과함을 국제표준적(?) 기준을 들어 통렬하게 비판한다. 이는 문제인 정부에 대한 근원적 한계를 밝히는 것인데, 이를 방송으로 내보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은 야수적 자본주의를 온전히 유지하는 수구와 보수의 거대 양당 체계가 지배하는 나라라는 주장을 누가 쉽게 받아들일 것인가. 유럽의 기준에서는 상식이 우리나라에서는 과격함으로 드러난다.


물론 김누리 교수는 과격함을 자신의 무기로 삼는 것이 아니다. 그는 냉철하게 우리나라와 독일의 사례를 비교하고, 우리가 모델로 삼고 있는 미국을 국제적 표준에서 성찰한다. 그리고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대학입시제도와 철폐와 경쟁적 교육시스템의 전면적인 개편, 계급계층의 구성 분포에 어울리는 정치지형의 형성, 노동자를 중시하는 노사관계의 구성, 병리적 증세에 빠져있는 남북한 사회의 발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 


김누리 교수가 이번에 쓴 책은 왜곡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바로잡는데 중요한 시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2020년에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잘 읽히고 가장 통쾌한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세계적인 변화를 일으켰던 68 혁명에 대해서, 가장 잘못된 인식이 상식처럼 여겨졌던 독일 통일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객관적 정치와 경제 지형에 대해서 뿌연 안경알을 깨끗이 닦아 바르게 보는데 아주 유용한 책이다.     


<추신> 김누리 교수의 책을 구입하여 읽은 독자에게 내가 쓴 《허균, 서울대 가다》(탐, 2018)도 구입하여 김누리 교수의 책과 비교해보시길 당부한다. 김누리 교수의 주장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 소설화한 좋은 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렇게 써놓고 나니 조금은 얼굴이 붉어지지만, 어쩔 수 없다. 좋은 책은 좋은 책이니까. 하지만 좋은 독자가 없는 좋은 책은 조금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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