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이 맹하면 제자들은 순박해지고
스승이 똑똑하면 제자들은 못돼집니다.
배우지 말라는 것은 한사코 배우고
배우라는 것은 결코 배우지 않습니다.
배움의 결과를 누가 예상하겠습니까?
영원한 올바름은 없습니다.
한 때 올바른 것이 그릇된 것이 되고
한때 선한 것이 사악한 것이 됩니다.
올바름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어떤 스승이 되어야겠습니까.
총명한 스승이 아니라 맹한 스승이 되십시오.
날카로운 스승이 아니라 무딘 스승이 되십시오.
빛나는 스승이 아니라 따뜻한 스승이 되십시오.
이제와 생각해보니 기억에 남는 스승은 똑똑한 분들이 아니다. 잘 가르치던 분들도 아니다.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었던 분들이 떠오른다. 만약에 스승에 졸업한 학교를 찾아간다면 그분들을 찾아갈 것이다. 나를 믿어주셨던 분들을.
만약에 내가 어렸을 적 배운 대로 살았다면 나는 반공투사가 되었을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이제는 초등학교로 개명했지만) 시절, 멸공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았다. 국군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북한으로 쳐들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포스터 위에는 선명하고 빨갛고 굵은 고딕체로 ‘멸공’이라 크게 써놓았다. 조회시간에 단상에 올라가 교장선생님께 상장을 받았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뛰어가 상장을 보여주며 자랑했다. 그때는 그래야만 했다. 평생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그때 나를 가르쳤던 교사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태극기를 휘날리며 광화문을 활보하고 계실까? 그분들은 자신이 자랑스러우실까? 지금쯤 부끄럽지 않을까? 나는 그때 나에게 뭔가를 강요했던 교사들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런 분들에게 배운 내가 창피하다. 그분들은 왜 그러셨을까? 진짜로 세상은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
국민교육헌장을 못 외웠다고 집에 보내지 않았던 교사, 유신헌법의 위대함을 선전했던 교사, 군사독재를 한국형 민주주의라고 말했던 교사, 그분들이 나를 키운 것이 아니다. 차라리 나를 키운 교사는 그때 아무 말도 없으셨던 교사다. 조용히 동화책을 내밀었던 교사다. 교사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