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노자 57 : 통 큰 스승

by 김경윤

가르침에는 올바름이 필요합니다.

변화에는 임기응변이 있어야 합니다.

제자를 얻으려면 억지가 없어야 합니다.


금지가 많을수록 자유는 빈곤해지고

수사가 많을수록 배움은 어지러워지며

변덕이 심할수록 잔꾀는 늘어나고

행정이 복잡할수록 비리도 많아집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금지가 없으니 위반도 없고

수사가 사라지니 단순해지고

변덕이 없으니 일관되어지고

복잡하지 않으니 통나무처럼 자랍니다.


노자의 《도덕경》에 등장하는 나무 이미지는 ‘통나무’이다. 아직 도끼나 끌이나 톱에 가공되지 않은 나무, 나무 모양 이외의 어떠한 모양도 갖고 있지 않은 나무,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무, 쓸모에 관점에서 보면 아직은 쓸모가 확인되지 않은 나무. 무지용(無之用)의 나무, 존재 그 자체로 거기에 남아있는 나무. 이 순박하고 투박한 나무야말로 노자가 추구하는 존재의 이미지입니다. 강제도 억지도 없이 그렇게 성장한 나무.

맹자는 그러한 나무를 가공하여 인간에게 쓰이는 나무가 되기를 바랐다. 맹자는 고자와 논쟁하며 버드나무는 그 부드러움으로 인해 휘어져 바구니를 만들 수 있다고, 그것이 버드나무의 본성이라고 말했지만, 고자는 버드나무가 바구니가 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잖냐며 반론했다. 노자의 입장이라면 맹자가 아니라 고자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굵은 나무.jpg

교사의 역할은 무엇일까? 아이들이 이 세상에 쓸모있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아이들이 아이로 행복하길 바라는 것일까? 세속적 값어치를 따지자면 그냥 그대로 있는 통나무보다, 가지를 자르고, 휘고, 모양내어 아름답게 꾸며진 분재(盆栽) 나무가 값어치가 있을 것이다. 성적을 올리고, 스펙을 쌓고, 경쟁력을 높이는 것은 분재나무를 키우는 것과 같다. 정말로 아이는 그것을 바랄까?

허리가 휘어지도록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 시험 때마다 불안해하는 아이들을 보면, 성적으로 좌절하는 아이들을 보면, 등급으로 차별당하는 아이들을 보면, 결국 이것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에 이르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교육현장이 무서워진다.

학교를 세우고, 학칙을 만들고, 교사를 뽑고, 수업계획을 수립하고, 수업을 진행하고, 보충하고, 시험보고, 평가하고, 줄 세우는 일들을 정말로 아이들은 원하는 것일까? 그것이 냉엄한 현실이라고 말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일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새로 쓰는 노자 56 : 침묵의 스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