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맛 23 : 백정의 양생법

구수한 맛 2 - 두께 없는 칼날로

by 김경윤

두께 없는 칼날로


포정이 문혜왕을 위해 소를 잡았습니다. 손으로 뿔을 잡고, 어깨로 소를 받치고, 발로 밟고 무릎으로 누르고는 칼질을 하는데, 그 동작이 춤과 같고, 소 잡는 소리가 음률이 있는 듯했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문혜왕이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훌륭하도다. 어찌 기술(技)이 이런 경지에 도달했단 말인가?”

포정이 칼을 내려놓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은 도(道)입니다. 기술을 넘어선 것이지요. 저도 처음 소를 잡았을 때는 소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삼 년 뒤에는 소를 보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마음(神)으로 소를 대할 뿐 눈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각의 작용은 멈추고 마음 가는 곳을 따라 움직입니다. 자연의 결(天理)을 따라 틈과 틈을 가르고, 그 틈 사이로 칼을 넣어 움직입니다. 그래서 힘줄이나 질긴 근육에 칼이 닿는 일이 없습니다. 큰 뼈야 더 말할 나위 있겠습니까?

솜씨 좋은 백정은 일 년마다 칼을 바꾸는데 그 이유는 살을 자르기 때문입니다. 보통 백정은 달마다 칼을 바꾸는데 뼈를 자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칼로 십구 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잡았습니다만, 아직도 칼날은 숫돌에 새로 간 것 같습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이 칼날에는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칼날이 틈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니 칼날이 마음껏 놀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집니다. 그래서 십구 년이 지나도 칼날이 새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저도 뼈와 살이 엉긴 곳(族)에 이르면 다루기 어려워 조심합니다. 조심조심하면서 눈은 그곳을 주목하고 동작을 늦추며 칼을 매우 미세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듯 후드득 살과 뼈가 분리되어 쌓여갑니다. 그렇게 일을 마치면 칼을 들고일어나 사방을 둘러보며 흡족한 기분에 젖습니다. 그리고는 칼을 잘 닦아 잘 보관해 둡니다.”

문혜왕이 말했습니다. “훌륭하도다!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서 삶을 기르는 방법(養生)을 터득하게 되었도다.”

- <양생주> 3


너무도 유명한 포정해우(庖丁解牛) 이야기다. 포정(庖丁)은 소를 잡는 백정 – 요즘은 ‘육부장’이라 부른다 -이다. 포(庖)는 이름일 수도 있고, 요리사라는 일반명칭일 수도 있다. 문혜왕은 실제 인물이지만, 포정은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 문혜왕은 맹자가 알현하고, 혜시가 재상으로 지냈던 양나라의 혜왕이다.

포정이 문혜왕 앞에서 신묘한 솜씨로 소를 잡는다. 문혜왕은 찬탄하며 그 놀라운 기술(奇術)의 경지를 묻고, 천민인 포정은 문혜왕의 용어 사용을 교정하며, 기술이 아니고 도(道)라 말한다. 백정의 태도가 고분고분하지 않다. (이렇게 천민이 오히려 왕들이나 귀족들에게 새로운 경지를 가르치는 사례는 《장자》 전편에 걸쳐 ‘수두루 빡빡’이다.)


① 그러면 기술과 도는 무엇이 다른가? ‘기술’은 상대방을 객체로 의식한다. 대결하고 물리치고 쳐부숴야 할 대상이다. 그런 상대방과 대결하려면 좋은 무기가 필요하다. 단단하게 날카로운 칼과 같은 것, 하지만 ‘도’의 경지에 도달하면, 상대방을 객체로 인식하지 않는다. 삼라만상에 펼치진 결(天理)로 본다. 소는 해체되기 이전부터 해체된다. 해체(destruction)의 시선이 도의 시선이다. 그러한 시선을 가지려면 육안(肉眼)이 아니라 깨끗한 마음(神)의 눈, 즉 심안(心眼)이 작동되어야 한다. 심안이 작동되면 포정은 소와 피 터지게 대결하지 않고, 부드럽게 결을 따라 춤을 추게 된다. 눈과 손으로 작동되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과 결로 이어지는 '도'다.


② 한편 ‘두께 없는 칼날’이란 무엇인가? 사심 없는 마음이다. 자신을 비운 자만이 얻을 수 있는 무기이다. 몸과 마음은 언제 열리는가? 상대방이 자신의 결을 느끼고 알 때다. 숨결을 느끼고, 살결을 느끼고, 삶의 결을 파악하는 자에게 우리는 몸과 마음을 열게 된다. 죽은 통나무조차 자신의 결을 따라 흐르는 대패에 순순히 몸을 맡긴다. 결을 거스르면 나무도 망치고 대패도 못쓰게 된다. 그러니 상대방을 만날 때는 두 가지를 유의하자. 1) 나는 사심이 없는가? 2) 나는 상대방의 결을 파악하고 있는가?


③ 그렇다 하더라도, 도인(道人)이라고 무사(無事)한 것은 아니다. 사건은 곳곳에서 터진다. 결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고, 뭉쳐진 곳이 있으며, 엉긴 곳이 있다. 한자에서는 이를 ‘족(族)’이라 한다. 족(族)이 들어있는 단어를 떠올려 보라. 가족(家族), 친족(親族), 동족(同族), 민족(民族)! 엉키고 엉켜 흐르지 않는 단위, 그래서 조심조심 느릿느릿 섬세하게 해체해야 할 단위가 바로 ‘~족’들이다.


④ 마지막으로 양생(養生). 사전을 뒤져봤더니 “①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서 오래 살기를 꾀함. 섭생(攝生). ② 병이 낫게 조리를 함. ③ ⦗건축용어⦘ 콘크리트가 굳을 때까지 적당한 수분을 유지하고 충격을 받거나 얼지 않도록 보호하고 관리하는 일.”이라 쓰여있다. 이 중 ①이 적당하겠다. 요즘 말로 '웰빙(well-being)'이다.


이제 결론. 어찌 살 것인가? 상대방과 경쟁하고 상대방을 파괴하는 육체의 기술이 아니라 상대방의 결을 따라 틈을 발견하고 그 넓은 틈으로 들어가 함께 춤을 추는 마음의 길을 따라 살 일이다. 대결하면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괴된다. 미움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도 파괴한다는 것이 모든 드라마의 보편문법이다. 복수의 악순환 고리를 끊는 것은 사랑과 용서라고 중국무협지는 끊임없이 강조한다. 양생(養生)은 나만 사는 기술이 아니라 나도 살고 너도 사는 길이다. 같이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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