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의 외편인 <거협>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짝을 여는 도둑에 대비하려면 반드시 끈으로 묶고 자물쇠로 채운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들면 궤짝을 지고 상자는 들고 주머니를 메고 달아나면서 오로지 끈과 자물쇠가 단단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니 세상의 이른바 지혜라는 것은 곧 큰 도둑을 위해 재물을 잘 꾸려두는 것이 아니겠는가?”
소중하게 감싸고 묶어둔 보물을 통째로 가져가 버리는 대도(大盜)가 나타나면. 보물을 감싸고 묶어둔 지혜마저도 그의 것이 되고 말터이니, 세상의 지식이라는 것도 결국 도둑의 것이라는 장자의 시대비평이 녹아있는 일화입니다. 플라톤이 쓴 《국가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소크라테스의 맞상대인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란 강자의 이익”에 불과하다고 말하지요. 강한 자들은 힘을 이용하여 지식을 지배하려 할 테니까요.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할 지식이 오히려 악용되면, 잘못된 지식이 펴져나가고, 왜곡된 개념이 세상을 더럽히지요. ‘통합’을 이야기하면서 분열을 조장하고, ‘새로움’을 주장하면서 수구를 지향하고, ‘국민’을 말하면서 국민은 아랑곳하지 않는 사태를 우리는 너무도 실감하고 있습니다. 원칙과 윤리가 사라진 지식은 무지보다 무섭습니다. 온갖 지능형 사기들은 모두 이러한 지식을 자신의 이익에만 초점 맞추어 이용하지요. 더구나 자신의 지식을 이용하여 상대편을 조롱하고 주눅 들게 하고 자신을 강화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지식인들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지식인이 된다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하물며 스승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두려운 일일까요? 적어도 스승은 기능형 지식인을 넘어서야 합니다. 얄팍한 지식으로 제자들을 가볍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작은 그물을 던지면 작은 물고기만 잡힙니다. 스승의 가르침은 ‘하늘의 그물’을 닮아, 제자들의 가슴속에 하늘을 담아주어야 합니다. ‘하늘의 그물’은 ‘하늘의 사람’을 낚습니다. ‘하늘의 사람’ 예수도 제자에게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너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였지만, 이제부터 너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리라.”(마태복음 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