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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May 04. 2021

노자의 작가론 27 : 모든 것이 좋았다

작가의 관점에서 새로 쓰는 노자 <도덕경>

공유가 도깨비(김신)로 나오는 드라마 <도깨비>는 명대사의 향연인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6회차에서 메밀꽃밭으로 은탁이를 데리고 가서 마주보며 한 김신의 대사입니다. 여러분도 다 아실 겁니다.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좋고 나쁨은 객관적인 사태가 아니라, 어떠한 사태든 그것을 바라보는 내적이며 주관적인 마음 상태이지요. 사랑에 빠지면 어떠한 상태라도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억지가 아닙니다. 정말 그럴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좋게 다가옵니다. 비와 와도, 눈이 와도, 바람이 불어도, 햇볕이 쨍쨍해도……. 기독교의 신(神)도 모든 만물을 창조하며 ‘좋았다’라고 고백합니다. 적어도 이때만큼은 사랑에 빠진 신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도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마주 선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만나면 만나는 대로, 헤어지면 헤어진 대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그대로 좋은 글감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작가에게는 모든 것이 좋은 글감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심지어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글이 쓰여지지 않는 시간도 좋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 상태, 그 느낌을 글감으로 쓰면 됩니다. 왜 글감이 떠오르지 않는지, 왜 글을 쓸 수 없는지를 쓸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시간이 더욱 작가를 작가답게 만드는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자기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될테니까요.


이 세상에 쓸데없이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 자체로 온전히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갓 피어나는 꽃잎도 아름답지만, 생을 마감하고 후두둑 떨어지는 꽃잎도 아름답습니다. 젊음이 아름답다면 늙음 또한 아름답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세요. 바람에 날리며 쓰레기처럼 버려진 종이 조각도, 휴지통에 버려진 구겨진 종이컵도 그 자신의 생애가 있습니다. 떨어진 과자부스러기에 모여드는 개미떼의 행렬도, 나뭇가지에 포로롱 앉아 우짖는 작은 박새의 모습도 참으로 신기하고 아름답습니다. 자세히 보고 들으면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글감을 찾아 여기저기 떠돌지 마십시오. 그대 주변의 모든 것이 글감입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글감입니다.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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