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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윤 Nov 01. 2022

장자를 달린다 15 : 나는 어떤 지식인인가?

- 15편 <각의(刻意)>

뜻을 높이지 않고도 높은 사람, [若夫不刻意而高]

어짊과 의로움이 없이도 몸을 닦는 사람, [無仁義而修]

공로와 명성이 없이도 다스리는 사람,[無功名而治] 

강과 바다에 노닐지 않고도 한가로운 사람,[無江海而閒] 

기운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장수하는 사람, [不導引而壽]

잊지 않는 것이 없는 사람,[無不忘也]

그러고도 갖추지 않는 것이 없는 그런 사람.[無不有也] 

         

예전에는 소위 피부터 고귀한 자, 귀족이라 불리는 자들은 왕공대부(王公大夫)라 했습니다. 그들은 땅과 재산과 백성들을 소유했기에 그들의 자식(정확히 말하면 적장자)들은 따로 공부하지 않아도, 물려받은 피만으로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었지요. 물론 이 귀족의 자식들은 일찍이 왕자님, 공자님, 군자님이라 불리며 제 아비의 모든 것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관리를 받았지만요. 그 귀족 끄트머리에는 선비가 있었습니다. 물려받은 것은 오로지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었으니 이 몸뚱아리를 잘 닦아서 실력을 쌓아야 했지요. 그것을 고전에서는 수신(修身)이라 합니다. 요즘 말로는 학력과 스펙쌓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고전에서는 선비[士]라 부르지만, 요즘 말로는 지식인(전문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는 난국(亂國)이라 이 난국을 헤쳐나가려면 별의별 지식들이 필요했지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화, 교육에 관한 지식을 습득한 자들이 세상에 나아가 자신의 실력을 자랑하고 관료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며 자신을 세일즈하며 살았는데, 그 전국을 떠도는 세일즈 행위를 유세(遊說)라 했습니다. 유세객(遊說客)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유세객이 바로 공자(孔子), 맹자(孟子), 순자(荀子) 등입니다.

이렇게 유세를 잘해서 출세(出世)한 지식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지식인들은 출세에 실패하는 고배(苦杯)를 마셔야했습니다. 경쟁률 높은 국가고시에 붙거나,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입사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요. 그리하여 낙향(落鄕)하여 다음번 출세를 준비하거나, 아예 출세를 포기하는 지식인들도 넘쳐났지요. 오늘날 고학력 실업자들이 넘쳐나는 것처럼요.   

  

《장자》 15편 <각의(刻意)>에는 온갖 지식인들이 나옵니다. 장자는 크게 다섯 부류로 지식인을 나눴는데요. 하나 하나 알아볼까요. 우선 ‘산곡지사(山谷之士)’가 있습니다. 말 그대로 산골짜기에 숨어사는 지식인입니다. 그들은 세상과 동떨어져 사람들과 다르게 살며 고답적인 이론으로 세상을 원망하며 세상을 비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것이 마치 고상한 행위인 양 날카로운 마음[刻意]을 갖고 살지요. 다음으로는 ‘평세지사(平世之士)’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인의(仁義)니 충신(忠信)을 말하고, 몸으로는 공손하고 겸손하며, 자신보다는 남을 치세우면서 겸양하듯 보이는 지식인입니다. 이들은 사람들 가르치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다음으로는 출세주의자라 할만한 부류인데 장자는 이를 ‘조정지사(朝廷之士)’라고 불렀습니다. 뛰어난 공적을 말하고 큰 명예를 세워 임금을 높이고 강국(强國)을 만드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지식인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고위관료나 회사의 중역에 해당하는 사람들이겠지요. 이들과는 다른 부류로 ‘강해지사(江海之士)’가 있습니다. 말뜻 그대로 강이나 바다에 노닐면서 물고기나 낚으며 한가로이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피해 자연 속에서 살면서 여유자적한 삶을 사는 사람이지요. 재미난 지식인도 있는데요, ‘도인지사(導引之士)’가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호흡법과 다양한 기체조를 하면서 몸을 보양하는 것을 전문으로 하는 지식인입니다. 이들의 목표는 건강과 장수(長壽)입니다. 요즘에 유행하는 건강전도사, 헬스클럽 지도사, 기공이나 호흡법 강사들이 이 부류에 속하겠네요.     


자, 여러분은 어느 부류에 속하십니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아마도 ‘평세지사’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인문학을 팔고 다니는 지식인이니까요. 아마도 대부분의 재야(在野) 지식인들이 여기에 속하는 사람일텐데요. 이런 지식인들에게 출세할 수 있는 기회만 주어진다면 웬만한 지식인들은 분명 ‘조정지사’로 변신할 확률이 높습니다. 나라에서 발탁하고, 대학에서 모셔가고, 방송국에서 부른다면 누군들 이를 마다하겠습니까.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라고 호기있게 말하지만, 돈 앞에서 체면 따위는 결국 버리는 사람이 넘쳐납니다.     


장자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요? 보통 은둔생활을 하고 세상을 비판하면서 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산곡지사’나 ‘강해지사’를 떠올리겠지만, 장자는 이런 지식인들을 비판합니다. 장자는 세속에서 벗어나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세속으로 들어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했던 지식인입니다. 그렇다면 장자는 우리에게 어떤 지식인의 모습을 권장할까요? 장자는 이 다섯 부류의 선비(지식인)들을 열거하며 특징을 설명한 후, 이와는 달리 자연의 도를 따르는 성인(聖人)은 이들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장자가 모델로 삼았던 성인(지식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다섯 부류의 지식인들이 추구하는 것 없이도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장자원문을 제 방식으로 변형해석해보았습니다.


사랑을 말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 

정의를 외치지 않고 정의로운 사람, 

공로를 들어내지 않아도 넘치는 사람,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다 아는 사람, 

높은 지위에 없어도 드높은 사람, 

비싼 옷과 악세사리로 치장하지 않아도 빛나는 사람, 

살면 살수록 자연을 닮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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