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9 : 루틴 만들기

2023. 7. 12.

by 김경윤

친구 없이 시작하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저녁은 12시쯤에 잠자리에 누웠는데 오늘 아침 7시 반쯤에 깨어났다. 중간에 한 번도 깨지 않고 꼬박 잠든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다. (내가 이렇게 오래 깨지 않고 잘 수 있다니.)

친구랑 같이 지낸 지난 일주일은 친구의 루틴을 따라 섬에 적응하는 기간이었다. 친구 덕분에 몇 가지 좋은 루틴이 생겼다. 기록해 보자면.

1)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2) 삼시 세끼 꼬박 챙겨 먹기

3) 반드시 그릇에 예쁘게 차려 먹기

4) 하루 세 번 운동(산책)하기


평상시 나라면 이중에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을 것이다. 이제 친구 없이 홀로 지내니 이 네 가지를 지킬 수 있을지 자신은 없다. 그래도 이 중에 1)번과 3)번은 꼭 지켜보고 싶다. 특히 3)번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은 세 끼를 꼬박 챙겨 먹었는데 규모와 음식의 특성을 생각하며 차려 먹었다. (심지어 저녁은 꽃병까지 세워 분위기를 잡았다. 친구보다 더 진화한 것인가?)

아침은 빵과 쨈. 계란.그리고 십자칼집을 넣은 소시지와 냉커피. 점심은 만두찌개, 저녁은 두부깅치찌개를 먹었다.

내가 새로 생각하는 루틴은 고양이들을 위해 하루 한 가지씩 좋은 일을 해보는 것이다. 오늘은 고양이 공간에서 가장 더러운 것을 찾아 빨아 널었다. 매일 하나씩 세척하면 고양이도 훨씬 쾌적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고양이들과 거실을 공유할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전쟁 대신 평화가 올까?)

두 번째 루틴은 가파도를 산책할 때, 버려진 플라스틱 쓰레기를 주워볼까 생각하고 있다. 알아보니 해안가 바위에 널려있는 쓰레기는 특히 연휴철에 급증한다 한다. 그래서 요즘은 주 5일 매일 새벽 5시 반에 이장님과 매표소 직원이 해안가를 돌아다니며 줍는다고 한다. 매일은 안 되겠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나도 참여하고 싶다고 직원에게 말했다. (섬에서라도 머리보다 몸을 더 움직이고 싶다.)


세 번째 루틴은 가파도 주민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보고 그 이야기를 일기에 담아보고 싶다. 어차피 가파도에서 지내니 이분들과 더 깊이 친해지고 싶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의 글쓰기에 변화가 생기려나?) 해안가를 산책하다 만난 제주도 전통 돌담 보존 단체 회원분과도 이야기해보고 싶고, 가파초등학교, 가파보건소, 발전소, 경찰서 분원에서 근무하시는 분과도 얘기해 봐야겠다. 최고령 노인과 최연소 어린이도 만나 이야기 해야지. (어디까지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아참, 길냥이들을 찍기 시작했다. 고양이에 대해 별로 관심도 애정도 없었는데, 반강제적으로 고양이집사가 되었으니 노력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생겼다. 오늘부터 산책할 때 고양이 간식을 챙겨 나간다.(가파도에는 의외로 길냥이들이 많다. 더럽고 마른 고양이들을 보면 괜히 눈길이 간다.)

짧은 기간이지만 좋은 루틴을 만들어 나에게도 남에게도 조금은 나은 사람이 돼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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