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도 일기 15 : 독서 후

2023. 7. 17~18.

by 김경윤

김상옥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인간 : 원자에서 인간까지>는 한 물리학자가 바라보는 세상이다. 외출을 포기하고 드디어 그의 책을 완독했다. 여러 대목에 줄을 그었지만, 그중에 한 대목만 기록하기로 한다.


"인간이 야기한 환경 변화로 여섯 번째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는 증거가 많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를 극적으로 왜곡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에 존재하는 대형 척추동물 가운데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것은 닭이다. 대략 260억 마리가 있다고 한다. 그 다음은 인간으로 70억 명이다. 소, 양, 돼지가 그 뒤를 잇는데 각각 10억 마리 수준이다. 이 동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인간의 먹이라는 점이다. 인간이 먹지 않는 아프리카코끼리는 50만 마리, 아시아코끼리는 4만 마리 정도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먹는 동물의 1만 분의 1 수준이다. 더욱더 나쁜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지구의 평균 온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훨씬 극적으로 교란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것이다. 하지만 대멸종이 일어날 때, 최상위 포식자는 언제나 멸종했다. 참고로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간이다."(303~304쪽)


독서를 끝낸 뒤끝이 개운하지마는 않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뉴스에서는 연신 물난리를 당한 수재민과 사고자, 사망자의 소식으로 시끄럽다.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마당에 가파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한다며 세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무겁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물난리는 단순히 위기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서 생긴 일일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이 기후 변화를 만들었고, 그 결과 생태계를 훨씬 극적으로 교란시킨 것은 아닌가? 천재(天災)인재(人)는 서로 얽히고 얽혀 되먹임되는 것 같다. 작년보다 올해가 훨씬 그 강도와 지속도가 높아지고 있다.

잠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비는 내리지만 밖으로 나가본다. 우산을 챙겼지만 강풍에 쓸모가 없을 것 같다. 해안가로 나와 비를 맞으며 걷는다. 하동 선착장에 작은 배들이 정박해 있다. 배는 안전해 보인다.

선착장의 방파제 덕분에 파도가 잔잔하다. 저 방파제 너머의 파도는 거셀 것이다. 선착장을 벗어나 해안가를 잠시 따라 걸어본다. 파도소리가 커진다. 파도소리를 따라 더 걷는다. 해안가길에 몰려오든 파도에 온갖 부유 쓰레기들이 실려온다. 내일 아침 파도가 잔잔해지면 보일 것이다. 우리 문명의 초라한 잔해물들을. 파도는 자신이 실어 나르는 것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그저 자연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그동안 무슨 짓을 했는지.

파도에 밀려온 문명의 쓰레기들이 보이는가?

뭐, 이런 우울한 상념에 잠기며 잠시 바다를 바라보는데, 주변에 모기들이 먹잇감을 만났다는 듯 나를 물어뜯는 것만 같다. 온몸이 비에 젖고 팔과 다리가 근질근질하다. 아이고, 빨리 돌아가자. 파도를 뒤로 한채 급히 집으로 향한다. 모기의 무게도 감당하지 못하는 한심한 인간이 인간 문명을 걱정하고 있다니.

비에 젖어 집에 도착하니, 먹자(노란 어미 고양이)와 비비자(검은 어미 고양이)가 이 늦은 밤에 어디에 갔다 왔냐는 듯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어서 잠이나 자라며, 고개를 돌리고 딴짓을 한다. (아이고 내가 미쳤지. 비 오는 밤에 도깨비도 아니고, 왜 나간 거야.) 어여, 들어가 벌레 물린 데 약 바르고 잠이나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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