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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오후

우거지 갈비탕

by 빨간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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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이 펑 펑 내린 날의 우거지 갈비탕


지난가을.

촘촘하게 심었던 배추 모종을 솎아주다 보니 나온 어린 배추.

맛있는 것은 어찌 알았는지, 벌레가 지도를 그리며 잘도 먹어치웠다.

떡잎을 떼어내고 삶아서 우거지를 만들어 냉동실에 쟁여두고 갈비탕이나 감자탕에 넣어먹기로...

눈이 펑펑 오는 날

우거지 꺼내서 갈비탕 맛있게 끓여 먹자.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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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아침 출근길에 교통대란이 일어났다는 첫눈이 왔다. 출근할 일 없는 우리는 걱정은 뒤로하고 설경을 즐긴다. 오늘은 외출하지 말라는 남편의 잔소리는 옳으신 말씀으로 들린다.

오후 들어 점점 굵어지는 눈을 바라보니 정말 세월이 빠르구나, 한 해가 또 가는구나 등등 생각에 젖어있다가 퍼뜩 우거지 생각이 났다.


지난가을에 만들어 놓은 우거지가 나왔다.

말 그대로 눈 내리는 날 갈비탕을 해 먹겠다고 했는데,

우거지에 새된장(지난가을에 담근) 넣고 고춧가루도 넣고 잠시 볶아준다.


우거지는 있지만, 갈비는???

우리 집 냉장고가 갈비까지 품고 있는 넉넉한 냉장고는 아닌지라,

홈쇼핑 좋아하는 남편이 쟁여놓은 간편식 소갈비탕 한 봉지를 넣어 갈비와 우거지가 어우러지게 푸욱 끓여준다. 청양고추와 홍고추를 넣어 매콤함을 더해준다.


구수하고, 칼칼하고, 얼큰한 우거지 갈비탕 탄생.

어리둥절해 있는 남편을 식탁에 앉히고 이른 저녁이지만 초록색 병뚜껑으로 반주를 곁들이며 이 우거지의 히스토리를 알려준다.

눈치 빠르고 센스까지 겸비한 남편은 놀랍다는듯한 표정으로 열심히 맛있게 먹는다.

그 사이 내리던 눈은 멈춘 듯,

덕분에 첫눈이 펑펑 오는 날 정말로 우거지 갈비탕을 먹었다.

얇은 JQ(잔머리 지수)를 굴렸어도 아주 훌륭한 한 그릇의 갈비탕이 탄생한다.

푸근하고 넉넉해진 마음으로 서로를 걱정하며 위로하는 저녁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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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거지에 된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볶는다.

2. 간편식 갈비탕을 넣어 푹 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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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홍고추와 청양고추를 다져 넣어 얼큰함을 더한다.

4. 몇 년 전에 빚어놓은 새 그릇 꺼내 멋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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