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산책
하루가 지나가는 오후 3시의 산책 길
뭔가 일을 벌이기는 늦고 그렇다고 하루일을 정리하기는 이른, 조금은 어정쩡한 시간.
나는 이 시간이면 운동화끈을 고쳐 매고 집을 나선다.
산책이라는 것을 시작하는 것이다. 워낙 집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을 좋아하는 탓에 스스로 몸을 일으켜 운동이나 산책을 하는 것은 자주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남편과 함께 하는 것도 좋지만, 난 산책이라는 명목으로 혼자 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찬공기를 가슴깊이 들이켜고 힘찬 걸음을 내디딜 때면 약간 설레기까지 하다.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중이다. 혼자라는 말은 외로움으로 대변되기도 하지만, 함께 있을 때보단 혼자일 때 오히려 생각이 깊어지며 사색에 잠기는 자기 성찰의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엔 외로워야만 깨닫는 것이 있을 수 도 있으니.....
누구러질 때가 된 추위지만 그래도 매서운 찬바람이 가끔씩은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고 군데군데 남아있는 눈과 얼음덩이는 힘없어져 진 나의 다리를 잠시 갈 곳을 잃게 하기도 하지만 혼자만의 나의 시간의 즐거움에 방해가 될 순 없다.
연초에 다녀간 도쿄는(도쿄에 사는 아들의 별명) 다시 일상으로 제자리를 잡았을까? 하루하루 어떤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갈까? 유난히 사회성이 부족한 도쿄는 혼자 놀고 혼자 먹기를 좋아하더니 직업 역시 혼자 하는 컴퓨터 관련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재택근무가 길어지다 보니 더더욱 혼자만의 생활에 젖어있다. 결혼도 해야 하고 노후대비도 해야 할 텐데 계획은 하고 있을까? 등등 온갖 도쿄를 향한 걱정이 점점 태산을 이루고 있다. 노년의 나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려 하지만 젊은 아들의 혼자만의 시간은 나에게 근심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선가 "딱딱 딱딱" 하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인기척을 느낀 새가 날아간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려보니 다시 날아온 새는 딱따구리였다.
"저것이 오색딱따구리인가? " 나무뒤에 몸을 숨기고 살펴보니 거꾸로 매달린 새가 나무를 쪼면 딱딱 딱딱 소리와 함께 작은 나무조각이 땅으로 떨어져 내린다. 신기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 나는 잠시 아들생각에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 풀어지는 듯하여 다시 가벼운 발걸음이 된다.
내일은 캐슬남매들과(딸의 아들과 딸) 서너 시간 놀아주러 가야겠다. "이쁜 녀석들"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아이들은 역시 시들지 않는 꽃이다. 양지쪽은 얼음이 녹아서 신발에 진흙이 마구 붙어 올라와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 이러는 사이 나만의 반환점에 도착한다. 잠시 앉아서 산속의 나무들을 바라본다. 가슴속에 들어온 찬공기 들은 내 마음속의 나쁜 생각과 걱정들을 몰아내주는 듯하다.
내려오는 길은 발걸음도 마음도 가벼워진다. 올라갈 때는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있다면 내려올 때는 모든 것이 잘 될 거야 하는 긍정의 마음과 응원의 마음과 기원의 마음까지 보태진다.
아직 남아있는 저녁시간엔 읽던 책을(아버지의 해방일지 - 정지아 장편소설) 마저 읽고 맛있는 저녁밥을 준비해야겠다. 오늘도 난 참 잘 지낸 것 같지 않니? 파란 하늘에 대고 자랑질을 해본다.
반갑다 딱따구리야! 딱따구리가 땅에 떨어뜨린 나무조각들
해방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어 선택한 책,
아직 리뷰를 쓸 정도까지는 완파를 못했지만 너무도 재미있어서 아껴서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