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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지붕 Dec 15. 2023

슬기로운 노년 일기

혼자만의 시간의 힘

길쭉한 모양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며 뒹굴고 있다.

햇살이 따뜻한 듯하여 집을 나섰지만 숲속엔 이렇게 작은 바람이 불고 있었다.

졸참나무 잎일까? 상수리나무 잎일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윽고 야트막한 산길로 접어드니, 이름 모를 새들이 모여 수다를 떨다가 내 발자국 소리에 후드득 날아 자리를 옮긴다. 

평지를 걷는 것보다 산길은 오르락내리락이 있어 심심히 않아서 좋다. 발바닥에 힘을 딛고 좁은비탈길과 돌계단을 오르락내리락 하다 보면 목덜미에 땀이 송골송골하다. 

집 나서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 혼자 싱긋 미소를 짓게 된다.



남편과 같이 가는 산행도 재미있다. 

하지만 이렇게 혼자 가는 길은 새소리, 바람 소리, 나뭇잎 소리에 온전히 집중 할 수 있고, 

마른 가지 끝에 매달린 산수유를 들여다볼 수도 있고, 

고개를 힘껏 젖히고 파란 하늘을 맘껏 감상할 수도 있어 또한 좋다.

호젓한 숲속에서 혼자만이 보내는 시간에는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들,

아직도 잊히지 않는 기억이나 상처들에게 슬며시 말을 건네게 된다. 

꼭 그래야만 했었을까? 비록 답을 내릴 수는 없지만 마음은 가벼워지기도 한다.

우리와 비슷한 나이의 노부부가 손을 잡고 지나가고, 젊은 여자들이 큰 웃음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엄마 손을 잡은 5살 정도의 꼬맹이도 지나가고, 신나서 달려가는 강아지도 보인다.



나만의 목표점, 반환점에서 인증샷을 찍어 집에서 책보는 남편에게 보낸다. 곧이어 "참 잘했어요" 하는 답이 날아온다. 초등생들같지만, 우린 이런 사소한 것들도 참 좋아한다.

2시간 정도 산속에서 혼자 놀다 마트에 들러 저녁찬거리를 배달시키고 뿌듯한 마음을 가득안고 집으로 돌아온다.

혼자만의 시간으로 마음가득 삶의 충만함을 느낀다.


남편님, 이젠 같이 놀 시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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