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짓날의 팥죽이야기
오늘의 팥죽
유난히 팥을 좋아하는 남편은 동짓날이 되니 올해도 어김없이 팥죽을 찾는다.
그리 어렵지 않으니 만들어주겠다는데도 번거롭고, 힘들다면서 시켜 먹자고 한 그 택배 팥죽이, 그만 팥죽이 아니고 단팥죽이다.
팥죽인지, 단팥죽인지도 구별 못한 내 눈과 확인 없이 눌러버린 내 손가락을 원망했지만, 그보다는 곧이어 날아 들 남편의 잔소리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섭다.
어쩌지? 팥죽이 없어서 단팥죽으로 주문했다고? 잠시 갈등을 느꼈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단팥죽을 팥죽으로 고쳐 먹기로 한다.
잽싸게 찹쌀을 씻고 냉동실의 밤도 한 줌 넣어 급하게 밥을 짓는다.
다 된 찹쌀밥에 단팥죽을 넣고 섞어 끓여서 죽으로 만들었다. 이때서야 부엌에 들어서는 남편은 맛있는 팥죽냄새가 난다며 얼굴에 미소를 띤다.
이렇게 재 탄생한 오늘의 팥죽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동짓날의 식탁을 빛내주고 있다. 이 팥죽에는 밤도 들었다며 신기해하는 남편을 보고 나는 그냥 웃는다.
팥죽도 맛있지만,
나의 잦은 실수로 매일 들어야 하는 남편의 폭풍잔소리를 피할 수 있어서 나는 또 실실 웃는다.
어쨌든,
올해도 무사히 팥죽을 먹었다.
동지 팥죽은 해가 바뀌는 동짓날, 한 해 동안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음식이라는 설도 있으니 오늘 이 팥죽 한 그릇은 보약일 수도...
이 보약이 나의 건망증을 낫게 도와주시길,
그래서 남편의 잔소리를 벗어날 수 있기를 소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