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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지붕 Jan 02. 2024

슬기로운 노년일기

오늘의 교훈

 청소기를 들고 내 방에 들어온 남편은 오늘도 역시나 잔소리를 한다. 

항상 복잡한 책상 위와 책꽂이, 그리고 한쪽에 자리한 그림 그리는 도구들...  

지금 보는 책이나 자료들이 책상 위에 나와있는 것은 당연한 것을 남편은 그것들이 정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청소기소음보다 더 크고 많은 잔소리를 쏟아낸다.

이럴 땐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나는 잽싸게 책 보따리를 싸서 집을 나온다. 

 부부교사였던 우리는 젊은 시절에도 청소와 빨래는 남편 담당이었지만, 은퇴한 지금도 둘 다 백수이니 집안일을 거의 반반씩 하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담당집안일이 전보다 더 많아지게 되니 뒤따라 잔소리도 더 많이 하게 되는 모양이다.

정리 정돈해라, 골고루 먹어라, 좋은 걸로 골라 입어라, 세차를 해라.....  물론 다 좋은 말씀이지만 매일 듣는 나는 행복하지가 않다. 

오늘은 마침 그림수업이 있는 날이라 청소하는 남편을 남겨놓고 후다닥 집을 나온 것이다.

친구를 만나 수다도 떨며 세 시간 동안 그림수업을 하고 있으니 

 " 와, 이렇게 좋을 수가! " 오늘따라 그림도 잘 그려진다. 내친김에 글씨까지 써가며 나의 세 시간을 몰입의 즐거움으로 만끽한다.

맛있는 점심까지 먹고 집으로 향할 때면 말랑말랑해진 내 마음이 남편도 점심을 먹었으려나? 하고 남편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다. 남편도 심했던 잔소리를 반성이라도 한 듯 반갑게 맞아준다.

오늘 그린 그림을 보여주니 칭찬과 격려를 보내온다. 부부사이의 갈등은 때로는 정면승부보다는 이런 우회정책이 더 지혜로울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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