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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Feb 02. 2020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을 피우다 곤경에 처한 한 남자의 이야기

* 익명성 보장을 위해 직업, 이름, 나이 등을 임의로 수정하였습니다. 



같은 지역에서 자주 마주치다 보니 B 씨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같이 있으면 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 매너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을 굳이 바람둥이, 비(非) 바람둥이로 분류한다면, 그는 바람둥이는 아니었습니다. 여자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말을 거는 편은 아니었거든요. 타고난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와의 대면에서 소극적일 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타고난 성향을 받아들이고 사는 게 맞는지, 잠재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하는 게 나을지는 아무도 모를 겁니다. 해 봐야 아는 것이죠.  


B 씨는 본인의 성향을 더 적극적으로 바꿔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여자에게 자신감 있게 다가가는 모습으로 거듭나고 싶었죠. 한 때 '픽업 아티스트'가 유행했죠. 말 그대로 픽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픽업', 여자 꼬시기라고 표현하면 너무 경박한가요? 


예전에는 체계 없이 개인의 타고난 능력으로 여자에게 다가갔다면, 이걸 강의료를 받고 과외식으로 가르쳐주게 되었습니다. 여자에게 인기를 끌 수 있는 스타일링, 처음 다가갔을 때 던지는 멘트 등. 이런 것들을 학문적으로 고도화시켜서 가르쳐주는 듯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 픽업아티스트 실습 전 날이었습니다. 모모 클럽에 가서 실습을 하기로 했다는군요. 그동안 갈고닦은 기술을 실전에서 적용하는데, 옆에서 사부(?)가 지켜보면서 코칭을 해주는 겁니다. 


운동도 안 하던 양반이 헬스클럽을 오래 다녔는지 대흉근이 제법 빵빵해졌습니다. 남자 향수가 은은히 풍겨 나왔습니다.  머리 손질도 하고 손목에는 그럴듯한 시계도 찼습니다. 아, 이런 식으로 사람이 바뀌는구나. 


B 씨는 그간의 노력으로 나름 이성에게 어필을 했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입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옷을 걸친 느낌이었을 겁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본인 음식점도 차리게 되었죠. 아는 여자 지인을 매니저로 고용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그런 관계는 아니었나 봅니다. 


카톡 프로필 사진에 아기 모습이 올라와있길래, '아, 이제 아기 낳았구나.'싶었는데 어느 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이제 가게를 접고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하네요. 


"왜, 무슨 일이야?"

"내가 바람을 피우다 걸렸어. 아내가 화가 나서 다 접고 내려가자고 하네." 


그랬습니다. 여사친과 같은 공간에서 일을 하다 보니 어느덧 부적절한 관계가 되어버린 겁니다. 그때가 생각납니다. 픽업 아티스트 강의를 듣기로 결심했다던 그 날.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간직하고 살아갔을까요? 아니면 본인의 타고난 성향에 맞는 소확행을 누리면서 생활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건 결과론이니까요. 자신감을 길러서 본인이 정말 맘에 드는 이상형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죠. 


이런 이야기들이 들려올 때마다 사람의 욕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어비스]에서 니체의 '선악을 넘어서'에 나오는 문장을 다음과 같이 인용했죠.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약간 비틀어서 표현해보면 이렇습니다.

"그대가 오랫동안 욕망을 들여다볼 때, 욕망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욕망은 당신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욕망에 순응할지, 과감히 뿌리칠지 말이죠. 속세에 사는 우리가 안고 가야 할 숙명이겠죠. 바쁘게 살다가도 잠깐씩 멈춰 서서 마음을 들여다봅시다. 인생에서 마주치게 될 암초를 잘 피해 갈 수 있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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