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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May 28. 2019

싫은 말도 듣는 용기

이제는 들을 수 있다.

우리 어머니는 말하셨다. 아버지가 답답하다고. 우리 집은 엄모자부(어머니는 엄하고, 아버지는 유하다) 집안이라, 상대적으로 아버지의 발언권이 약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혼날 만한 일은 말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특히 경제적인 지출 관련해서는 독단적으로 몰래 처리하고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곤 했다.  


세입자가 계약 만료로 나가게 됐을 때 너무나 후하게 뒷처리를 해준 것은 아버지였고, 나중에 알고 마땅히 받아야 할 돈을 받기 위한 감정싸움과 뒷처리는 어머니 몫이었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억울할 만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집안 구성원을 대표해서 확약했던 사안이 갑자기 엎어져버렸기 때문이다. 일처리를 그리 하겠다고 어머니와 미리 상의만 해두었더라도 벌어지지 않을 일이었다.


어머니가 징글징글해하던 아버지의 습속을 나도 닮았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나도 이렇게 됐다고 말하기는 비겁하여 '물려받았다'는 말은 쓰지 않겠다. 하여튼 나 또한 그런 습속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원하는 대답을 못 들을 것 같으면 아예 말을 하지 않는 편이다. 이는 공유의 부재 또는 소통의 부재를 낳고 결국은 사람에 대한 신뢰 저하로 이어진다. 아버지의 그런 면을 싫어하셨던 어머니는 나에게서 비슷한 면을 보게 되자 '음흉하다'며 나무란 적이 많다. 


그런 나무람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란 나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은 개원 때도 이어졌다. 개원 때 선배의 독특한 시스템을 참고했는데 그게 일반적인 패턴은 아니었다. 일요일 진료라든지, 개원 초부터 사람을 많이 뽑는다든지 등등. 사람에 따라서 얼마든지 반대되는 의견을 말할 수도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 또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부정적인 의견을 들으면 위축될까 두려워 일부러 주변에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 오직 그 선배에게만 조언을 구하고 거기에 심리적 안도감을 느끼며 일을 추진해 나갔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 선배와 나는 사람 성향 자체가 달랐다. 그 사람에게 맞는 옷이 나에게는 맞지 않을 수도 있으며, 동시에 그 사람의 조언이 나에게 꼭 유효하지만은 않다는 의미이다. 


임대 계약을 맺고 나서 개원 계획까지 짜여진 시점에서 동종 업계 동료 둘을 만나서 술을 마시게 되었다. 


"너 개원 계획 어떻게 되어가냐?"

"알아보고 있고 조만간 정할거야."

"아, 그래? 잘 할 거다. 열심히 해."


이미 모든 상황이 완료되었는데도 친구에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내가 만들어낸 기획이 친구의 피드백을 거쳐가는 게 두려웠다. 예를 들어 처음부터 부원장을 뽑는다고 했을 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라는 말을 듣기가 싫었던 것이다. 


내 소견은 참으로 좁고 답답했다. 지금도 비슷할 것이다. 마음 회로가 꼬여버린 나를 돌이켜보면서 정신적으로 곤란을 겪는 사람들이 비로소 이해가 되기도 한다. 상식적으로는 정말 이상하지만,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몇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어떤가? 

듣기 싫은 말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릴까봐 귀를 닫고 있는가? 

여전히 마음은 흔들린다. 다만, 듣기 싫은 말도 한 번은 꼭 들어보려고 한다. 


최근에 병원 cctv를 바꾸겠다는 말을 아내에게 꺼냈다.

"당신 CCTV 이미 있잖아요."

"몇 년 지나서 새걸로 바꿔볼려구요."

"한 달에 O만원이면 3년 약정에 OO만원인데. 굳이 그렇게 돈을 써야 해요?"

"여보 말이 맞네요. 알았어요." 


내 의견에 동조해주기 바랬지만, 반대되는 의견을 듣고 납득이 되자 바로 철회했다. 남들에게는 별 거 아닌 대화겠지만 나에게는 큰 변화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싫은 말도 들을 줄 아는 용기. 남의 말 듣는 게 힘들었던 사람들은 마음의 걸음마를 하는 나를 보며 위안을 삼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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