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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필 Nov 30. 2017

소신 슈퍼는 어디로 갔을까

자영업자(Self-employed)의 고단함 


전북 익산시에 위치한 원광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첫 2년을 기숙사에서 지냈다. 이름은 '도덕관'. 보통 기숙사와 다르게 학교 밖 1킬로미터 거리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종교 재단의 냄새가 짙게 밴 도덕관은 학교에서 의치한약, 즉 메디컬 학과 학생을 수용하기 위하여 지은 건물이었다. 


학교 강의가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은 대학로를 관통하게 되어 있는데, 번쩍번쩍한 가게들 사이에서 희한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슈퍼가 하나 있었다


번잡한 대학로에서 한적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들 무렵 한쪽 모퉁이에 10평 남짓 되는 낡은 가게가 '소신 슈퍼' 간판을 내걸고 있었다. 10년 전에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을 동네 점방이었다.


소신 슈퍼와 비슷해서 퍼왔습니다. 출처 :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4685334&memberNo=24538560



매대가 두 개 정도, 음료수 냉장고 하나, 아이스크림 냉동고 하나가 전부였다. 주인이 앉는 책상에는 불량식품 같은 자질구레한 간식들이 놓여 있었다.


그 위용(?)에 어울리지 않게 슈퍼는 근처에서 꽤 알려진 명소였다. 학생들끼리 "야, 소신 슈퍼에서 봐!"라며 약속을 하기도 했고, 늦은 밤 귀가할 때면 빵 하나 정도는 이 곳에서 사야 마음이 편했다. 특별하지 않아 특별했던 그 가게는 그렇게 소소한 고객들의 구매로 소소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어느 날, 대각선 맞은편 5,6미터 옆에 몇 배는 큰 슈퍼마켓이 들어섰다. 나는 여전히 소신 슈퍼를 소신 있게 방문했지만, 주변 원룸촌 학생들은 새로 생긴 가게를 이용했다. 


몇 주 후, 소신 슈퍼 창가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내걸렸다.


"폐업 예정, 물건 할인 처분"


골리앗은 이겼다. 명멸하는 가게의 기운을 느끼며 마지막으로 물건을 샀다. 나를 맞이한 분이 아주머니인지, 아저씨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사라진 가게의 모습처럼 기억도 많이 희미해졌다. 


"저렇게 큰 슈퍼를 바로 옆에 허가 내주면 안 되는데. 그래야 우리도 숨통이 트이지."


동종업계 간 개설 가능한 거리 간격이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가게가 문을 닫는 데는 몇 주 걸리지 않았다는 게다.


혹자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자의 자연도태를 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런 상황에서 경쟁의 당연한 결과라며 깔끔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자본을 증식하는 능력만이 진정한 능력이고,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을 하는 성실함은 쳐주지 않는 자본주의에는 인간성이 배제되어 있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를 쓴 로버트 기요사키는 사람들의 직업 유형을 사분면으로 분류한 바 있다. B(Business owner)는 사업가로 본인이 없어도 굴러가는 사업체를 운영하며, I(Investor)는 투자가로서 돈으로 돈을 번다. E(Employee)는 봉급생활자이며, S(Self-employed)는 자영업자나 전문직처럼 직접 가게를 꾸리지만 본인이 없으면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B와 I로 제 때 전환하지 못한 S의 몰락은 당연하면서도 동시에 참담하다. 현대의 제로섬(zero-sum) 게임에서 아무리 열심히 한들 B와 I는 그 수가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E, S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현대가를 일군 정주영은 얼리버드(Early bird) 정신을 외쳤지만, 그게 모든 걸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정유라는 이렇게 외쳤나 보다. "돈도 실력이야!" 그 실력이 없어서 스러져간 소신 슈퍼를 지금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가슴 한 켠 소시민적 의리 때문이다.  












P.S : 제목 배경화면에 있는 헤어숍 위치가 예전 소신 슈퍼 위치였다. 오래전이라 지도 거리뷰에서도 그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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