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 자린고비 석주임 - 2
석주임에게 더치페이는 너무나 좋은 문화이다. 현금 없는 시대에 태어난 것은 석주임에게 큰 축복이다. 그는 1원 단위까지 나누어 분배하는 습관이 있다. 다만 이 생각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편은 아닌듯 하다. 그래서 총무의 스타일에 따라 10원 100원 미만은 내림 혹은 올림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까진 괜찮다. 만일 1,000원 미만단위까지 내림 혹은 올림으로 더치페이를 하게 되면 석주임은 속이 좀 안 좋다. 그래서 더치페이를 하게 되면 석주임은 총무를 자진해서 맡는 경우도 있다. 다만 말수가 적고 사람들 사이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 석주임에게 그건 정말 최후의 수단이다. 1,000원은 그래도 선을 넘은거다.
카카오 더치페이 기능이 나왔을 때, 석주임은 세상이 올바른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많은 회사가 그렇듯 복장은 자율이다. 그건 석주임이 입사할 때부터 그래왔다. 다만 사회통념상 암묵적인 룰이 있다. 예를 들면 '청바지는 입으면 눈에 띌 수 있다. 맨투맨까지는 괜찮으나 색이나 디자인이 너무 화려하면 눈에 띈다. 샌들, 반바지는 욕먹기 딱 좋다.' 등. 석주임은 눈에 띄는 걸 싫어한다. 그리고 어지간하면 눈에 띄는 건 피하는 게 장기적으로 좋다는 생각이다. 석주임은 어두운 색의 슬랙스에 카라 면 티셔츠, 운동화를 입고 출근한다. 상의는 색만 다른 5가지를 요일별로 돌려 입는다. 5개를 동시에 사면 30% 할인을 받을 수 있어서 며칠 고민한 끝에 구매한 제품이다. 하의는 검은색, 네이비색, 회색 세 가지만 입는다. 재미있게도 석주임은 요일별로 입는 옷의 색이 정해져 있다. 월요일은 흰옷, 화요일은 네이비, 수요일은 짙은 갈색 등이다. 이걸 보고 지대리는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까먹었을 때, 석주임 상의 색을 보고 오늘이 몇일인지 알아내곤 한다. 오늘은 화요일, 짙은 네이비색 폴로셔츠를 입는 날이다. 하의는 검은색을 두벌 사두고 돌려 입는다. 그리고 하의는 상의를 검은색을 입을 때 가끔 회색이나 네이비를 한 번씩 입는 식이다. 검은색 하의 중 한벌은 김 과장이 동일한 브랜드 동일한 제품을 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다. 신발은 2만 원대 검은색 운동화를 발이 불편해질 때까지 신다가 누가 지적하면 그때서야 바꾼다.
그는 빨래도 정해진 시간에 한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세탁기에 다섯 벌의 폴로셔츠를 넣고 돌린다. 하의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빨래한다. 운동복은 매일 샤워할 때 손빨래를 하는데, 건조가 잘되는 소재로 만들어진 덕분에 다음날 항상 말라있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에는 어김없이 집안 청소를 한다. 먼지를 닦고, 이불을 털고, 옷장을 정리하고 신발장을 정리한다. 마지막으로 쓰레기통을 비우고 분리수거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깔끔하게 끝낸다. 그리고 단백질 위주로 구성된 간편식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게임 동영상이나 영화 리뷰를 본다. 물론 듣기만 해도 내용을 거의 이해할 만큼 석대리는 그 방면에서 조예가 깊다. 동영상을 보고 있으면 언제나 그렇듯 세탁기는 성실하게 약속된 시간에 빨래를 끝낸다.
빨래가 다 되면 간이 건조대에 빨래를 널어둔다. 항상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빨래가 나오기 때문에 건조대는 남는 공간 없이 가득 들어찬다. 이제 집이 습해질 시간이다. 동시에 헬스장이 개방할 시간이기도 하다. 그는 창문을 열어놓고 주말 운동을 간다. 주말 운동은 평소보다 2배 정도 길고 여유롭게 진행한다. 최근에 새롭게 생긴 관심사는 요가이다. 스트레칭과 균형감각을 동시에 익힐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따로 학원을 다니지는 않는다. 일단 이성이 많은 곳은 부담스럽다. 그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가는 것부터 진입장벽이 높다. 결정적으로 강의료가 월 30만 원에 달하는 것이 많이 부담스럽다. 이 돈이면 헬스장 6개월 수준이다. 비교 대상이 없다면 모를까 비교대상이 있으면 더 나은 선택지가 항상 하나를 포기하게 만든다. 하지만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이라는 근거가 있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주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면 3~4시쯤 되어있다. 녹초가 된 그는 단백질 셰이크를 마시고 낮잠을 청한다. 그리고 알람을 맞추지 않고도 해가 지기 전에 일어난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5km 달리기를 수행한 후,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이처럼 철두철미한 시간활용 덕분에 그는 주말에도 무료할 틈이 전혀 없다. 오히려 누가 이 생활에 들어오는 것이 부담스럽다. 그래서일까. 그는 연애 경험이 많지 않다. 서너 번 정도 연애를 경험해 봤고 최장 연애기간은 34일이다. 나머지는 1~2주 단위로 끝났다. 물론 연인과 함께 여행을 가거나 뜻깊은 추억을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런 그에게 유독 그의 귀를 긁어놓는 단어는 바로 '모태솔로'이다. 석주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 그건 사실이 아니니까. 하루를 만나던 한 달을 만나던 연애경험이 있는 거다. 그런데 왜 그 말에 유독 긁히는 걸까? 도통 모르겠다. 소개팅은 자주 들어오지는 않지만 관심은 있다. 간혹 들어오는 소개팅에는 성실하게 임한다. 그리고 그 소개팅이 실패할 때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길지 않았던 지난 연애들을 떠올려보곤 한다. 내가 잘못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