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였던 것

ep2 자린고비 석주임 - 3

by 밀크씨슬

그의 연애에서 가장 힘든 건 다름 아닌 연락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는 거다. 그는 항상 현재에 충실한 사람이 사랑도 충실히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마지막 이별이 떠오른다. 어떤 비 오는 날이었다. 일기 예보에 우천이 예고되어 있어 미리 오늘은 서로 집에서 할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했었다. 오랜만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운동과 게임을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이건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지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 혼자만의 시간도 중요했다. 그리고 석주임은 멀티태스킹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지내면서 연락도 하려니 둘 다 잘 되지 않았다. 운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여자친구랑은 싸우고 말았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가 결국 이별 통보를 받았다.


이별통보를 받은 석주임은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석주임은 억울한 것을 참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에 서운해하는 여자친구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내 상황을 상대가 정확히 알았다면 오해가 없었을 텐데.' 이 생각이 너무 간절히 들었다. 하지만 여자의 마음을 잘 모르는 석주임은 자기 행동의 근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효과적인 근육 성장에 필요한 운동 루틴을 수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 대해서 설명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서 약속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했다. 잠자코 듣고 있던 여자친구는 기가 찬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잘 지내'라는 말을 끝으로 그대로 나가 버렸다.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 지금도 석주임은 그녀가 왜 가버렸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의 다른 연애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여자친구쯤 되니 중간에 확인도 하고 연락도 된 것이지 친구나 동료정도면 그마저도 쉽지 않다.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은 흥미롭긴 하지만 굳이 하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필요한 사람들만 주변에 있으면 된다고 믿었다. 어차피 내 행복을 좌우하는 것은 주변사람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연애는 하고 싶고 너무 집에만 있으면 왠지 젊음을 낭비하는 것 같아서 모임 등에 종종 나가곤 했었다. 그리고 그는 '모임형 인간'이 아니었다. 그의 감정은 얼굴에 항상 쓰여 있었다.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은 몇 마디를 채 나누기도 전에 그가 본인에게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 금세 알아챘다. 자신한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과 길게 이야기를 나눠 줄 수 있는 사람은 몇 없다. 그리고 그 자리가 다른 사람들도 있는 모임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석주임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영 젬병이었다. 언제나 여럿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관전자 모드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자연히 석주임은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지금 겪는 모든 문제들은 내가 여유롭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면 알아서 다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의 만족을 미래의 만족으로 돌렸다. 구두쇠가 된 것이다. 석주임은 수입의 80%를 저축한다. 그마저도 10%는 연단 위로 모았다가 휴대폰을 바꾸거나, 노트북을 사는 등 비교적 큰 비용을 한 번에 지출하기 위해 따로 모으는 금액이다. 실제로는 급여의 10%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소비패턴은 유부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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