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주의자였던 것

ep2 자린고비 석주임

by 밀크씨슬

언젠가 출근을 최소 몇분 전에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었을 때, 누군가 묻자 석주임은 이렇게 말했다. "9시 정각에 일할 준비만 되어 있다면 9시 정각에 출근해도 상관이 없다. 단, 반드시 9시 정각에는 책상에 앉아 있어야 한다."

실제로 그는 9시 1분 전에 사무실로 들어와 10~20초 남짓한 컴퓨터가 부팅되는 시간 동안 환복을 완료한다. 그리고 전날 퇴근 전에 적은 루틴대로 바로 업무를 시작한다. 쉬는 시간은 철저하게 1시간 중 10분 이내로 제한한다. 물론 정말 바쁜 일이 있다면 쉬는 시간을 넘기기도 하지만 어지간하면 지키려 노력한다. 이 모든 행위를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사내 내규가 있어서도 아닌 스스로 만들어낸 규칙이라는 것에 석주임은 나름 자부심을 느낀다.


문제는 퇴근 때 발생하는데, 퇴근도 정시에 한다. 이걸 아니꼽게 본 상무가 퇴근 직전에 일을 줄 때가 있다. 참 난처한 상황이다. 야근을 해도 포괄임금제 덕분에 보상은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당장 들이받고 싶다. 나이와 직급을 막론하고 잘못된 건 잘못된 거다. 그리고 난 바른말을 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참는다. 이곳에 나를 인정해 주는 좋은 분도 계시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내가 바른말을 하면 그분이 곤란해진다. 그래서 참는다. 그리고 언젠가 고용노동부에 신고하고 말리라 다짐을 한다. 어쩔 수 없이 야근을 시작하려는 찰나, 어디선가 김 과장이 나타나 일을 도와준다. 덕분에 오래 걸릴 일이 금세 끝난다. 퇴근을 하며 감사한 마음에 김 과장에게 비타오백 기프티콘을 하나 보낸다. 그리고 속으로 이 사실을 명확히 한다. '이 선물은 결코 의무가 아니다. 좋은 사람에게 직접 전하는 존경의 의미이다.'


석주임은 관리팀에서 좋아하는 부류의 사람이다. FM의 표본인 그는 관리팀에서 모범 직원으로 항상 꼽힌다. 거의 모든 부분에서 사내 규정에 적힌 그대로를 숙지하고 거의 예외 없이 규정대로 실행한다. 단, 같이 일하는 입장에서는 조금 갑갑할 수도 있다. 원칙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시간이 다소 오래 걸린다. 대신 무슨 일이든 대충 처리하는 경우가 없다. 입력값이 같다면 출력값이 대체로 비슷하다. 그리고 인간관계도 FM이다. 확신의 'I'성향을 가진 그는 모든 인간관계에 선을 명확히 그어서, 퇴근 후에 그를 보려면 회식을 잡는 수밖에 없다. 퇴근 후에는 회사 혹은 동료로부터 온 연락도 받지 않는 것이 그의 원칙이다. 그나마 지금은 급한 업무적 연락은 나중에 확인하고 답을 해준다. 하지만 의외로 그런 그의 태도에 섭섭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처음에는 크고 작은 마찰도 있었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 모습 조차도 항상 사람들의 예상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누군가의 마음에 안 들 수는 있어도 적어도 변덕은 부리지 않는다.


그는 7시부터 9시까지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루틴대로 매일같이 운동을 한다. 계절이 지날수록 성장하는 몸의 근육과 그에 비례해 늘어나는 플레이트의 개수는 그에게 소중한 성취 중 하나이다. 그리고 한 번에 달릴 수 있는 km수도 매년 조금씩 늘어간다. 운동만큼 정직한 친구도 없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확실히 돌아온다. 그 보상은 때로는 생각보다 작을 때도, 천천히 올 때도 있지만 중요한 건 절대 배신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운동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성실함 하나만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석주임은 성실함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만일 그가 헬스장에 나타나지 않는 날이 있다면 그날은 회식날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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