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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an 15. 2022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할머니, 이모! 발표할 게 있어요. 크리스마스에 저희, 네 식구 됐어요.”


딸아이의 순진무구한 발표에 순간 당황한 엄마와 언니가 나를 쳐다본다. 저 눈빛, 이 분위기 뭐지?


“야야~ 그렇게 얘기하면 오해하시잖아~.”


“아~ 저희 크리스마스에 강아지 입양했어요. 이름은 ’하루’ 예요.”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야지. 그나저나 갑자기 2개월 된 아들이 생겨버렸다.


문학의 향기를 아는 하루님






갑자기 모든 곳에서 고양이가 나타난 것이다. 어디에나 고양이가 있었다. 주차장에도, 골목에도, 화단에도, 낯선 도시의 거리에서도 고양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갑자기 내 인생 어딘가에서 새로 문이 열려 고양이들이 쏟아져 들어온 것 같았다.


  무루의 책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의 문장이다.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하면서 고양이 문이 열렸고, 작가의 세계가 한 칸 넓어졌다고 한다. 우리 집에 쪼르르 들어온 강아지 한 마리 덕분에 내 인생에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강아지 문도 활짝 열렸다.


  동네 24시간 동물 병원과 무인 펫 샵의 위치를 제일 먼저 검색했다. 하루가 갑자기 아플 때, 사료가 갑자기 떨어졌을 때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함께 산책하기 좋은 길도 머릿속에 떠올렸다. 알고리즘 신은 강아지 첫 산책, 훈련 방법 동영상을 추천해준다. 키우는데 필요한 용품들. 강아지 목줄, 옷, 사료, 침대, 배변 패드… 문 안쪽으로 끝도 없는 세계가 펼쳐졌다.


  강아지가 열어준 문 안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 들어선다. 문 안쪽 세상이 밖으로 꼼질거리며 흘러나오기도 한다. 문 안과 밖의 경계는 흐려지고, 하루와 나, 우리의 세계는 또렷해진다.


  우리 집이 인간 사람만 사는 곳에서 강아지 사람이 함께 사는 집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배변 패드가 여기저기 깔려 있지만 눈에 거슬리지 않게 되었다. 거실 책꽂이 아래 서랍 한 칸은 하루 물건을 넣기 위해 비워둔다. 겨울이라 거실에 들였던 화분은 전부 테이블 위로 올라갔다. 하루를 위해 우리의 공간을 채우고, 비운다.


  작은 구피 어항을 들이고, 화분을 하나씩 집에 들인다. 강아지를 입양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구피의 문의 열리고, 식물의 문이 열리고, 강아지의 문이 열린다. 그들의 세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나의 세계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살기 시작했다.


 자작나무 사람들, 곰 사람들, 바위 사람들, 존중을 받을 자격과 사람 세상에 포함될 자격이 있는 인격체로 간주되고 (따라서) 인격체로 지칭되는 존재가 풍성하게 거주하는 세상을 거닌다고 상상해보라.

  <향모를 땋으며>의 작가인 미국 원주민 로빈 월 키머러의 말이다. standing peolpe. 서 있는 사람들이라 식물을 부르는 원주민의 언어에 충격을 받을 만큼 난 인간 중심 삶을 살고 있었다. 이제는 마음씀의 범위를 조금 넓혀 구피 사람과, 식물 사람과, 강아지 사람과 인간 사람이 함께 행복한 우리 집이 되길. 그리고 동물 사람과 식물 사람과 인간 사람이 함께 행복한 더 큰 지구도 그려본다.



* 빨간 문 그림 출처: <일기 고쳐 주는 아이>. 글 박선화, 그림 김완진. 잇츠북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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