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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Mar 12. 2022

깜빡과 반짝의 3월

"어디야? 언제 퇴근해?"

재택근무 중인 남편의 전화다.

"나 거의 다 왔어. 도서관 들려서 책 좀 대출해 갈게."

전화를 끊고는 늘 가던 대로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휴직했던 정신 상태 그대로 복직했다. 학기초이고,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이다. 어린이들의 가정으로는 가정통신문이 쏟아지고, 나는 그 회신문과 학기초 업무에 깔려 찌그러진다. 그래서 3월은 깜빡거린다. 정신 머리말이다.


  교실 뒤 게시판에 작품을 붙이다가 테이프가 필요해서 교실 앞 내 책상으로 걸어간다. 책상 앞에 서서 한참 생각해봐도 도저히 뭘 가지러 왔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출근을 했는데 교실 열쇠 비밀번호 4자리가 생각나지 않아 휴대폰 사진첩을 열어본다. 점심을 먹으러 급식실에 가기 전에 어린이들은 손을 씻고 체온을 재야 한다. 중요한 건 칠판에 적어 놓는다.

<급식 전 체온 측정!> 

눈에 잘 띄라고 그림 솜씨를 발휘해 글 주변에 몽실몽실 구름도 그려뒀다. 완벽하게 준비했다. 역시 잊어버린다. 다행히 급식실 입구에 체온계가 있어 교실에서 측정하지 못한 어린이들이 측정할 수 있다. 우리 반 어린이들이 착실하게 체온을 측정하는 바람에(?) 뒤에 다른 반 어린이들의 줄이 쭉 밀린다.


  또 내가 뭘 까먹었는지 까먹었다.


  어린이들은 금세 크고 학교에 적응한다. 담임에게 구멍이 있으면 그들은 일찍 철이 들어 스스로는 물론 선생님까지 챙겨준다. 얼마 안 있어

"선생님 체온 측정 언제 해요?" 하는 똘똘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럴 때 나는 당황하지 않고 프로답게 말한다.

"그래요. 우리 이제 체온 측정할까요? 자~첫째 줄 어린이부터 나오세요."

내가 모르는 걸 질문하면

"그건 숙제로 내줄 테니 한 번 찾아보세요." 할 때와 같은 니낌으로 당황하지 않는다. 스스로 크고, 스스로 배우는 자기 주도 학습이 벌어지는(?) 바람직한 교육현장이다.


  입학식 후 3일간 빈 물통을 챙겨 온 어린이가 있었다. 준비물로 <물통, 수저>라고 안내가 나갔다. 그래서 빈 물통을 계속 보내주신 학부모님이 계셨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 음수대를 사용하지 않아 어린이들이 집에서 물을 챙겨 와야 한다. 학교 생활을 쫌 해본 어린이들은 '물통'하면 '물이 들어있는(!) 통'을 뜻한다는 걸 척척 알아챈다. 그런데 학교 생활이 처음인 1학년 학부모님들과 어린이들은 순수하게 '그냥 물통'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선생님 물이 없어요." 빈 통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아주 씩씩한 어린이라 할 수 있다. 목이 마른데 가방에서 꺼낸 물통이 빈 물통이라면 얼마나 난감할까. 교실에 목마른 어린이가 없게 하라! 사명감에 불타는 교사가 되어 내돈내산 생수를 빈 통에  부어준다.

"내일은 물도 넣어 오세요."

담임과 학부모님의 의사소통 구멍은 이렇게 메꿔진다. 그리고 그날은 더욱 친절하고 긴~ 알림장을 전송한다.

준비물 <물통에 물을 넣어 보내주세요. 코로나로 학교 음수대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교사도, 부모도 적당히 모자라고 게을러야 어린이들이 잘 자란다. 완벽하고 부지런해 내 아이를 하나부터 열까지 챙기고, 부족함을 느끼기 전에 모든 것이 채워진다면 아이들이 스스로 해나갈 꺼리가 없다."라고 이 연사 힘차게 외칩니다~! 그러니 이 글을 어디선가 읽고 계신 1학년 학부모님이 계시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오늘도 깜빡 깜빡이는 희미한 정신줄을 움켜쥐고, 1학년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우리 개아들 '하루' 으르렁댈 만큼 반짝이는 옷을 입고 출근한다(하루 '합격!' 낯선 사람이 안방에서 나오면 으르렁 대야지.). 일찍 가고 늦게 남아 일하는(다른 선생님들이 학급 명부를 엑셀로 작성할  나만 붓글씨로 쓰고 앉아 있는  절대 아니다.), 열심히는 하지만 조금 모자란 선생님과 똘똘한 어린이들, 가방 메고 교문 들어서는 것만 봐도 짠하다는 학부모님들의 1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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