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가 아닌 인정으로부터
"어차피, 당신 말이 다 맞으니까 내가 다 이해할게"
우리의 대화는 늘 이렇게 끝났다.
늘 서로 다른 생각의 타협점을 찾는 것이란 전적으로 한쪽에서 사랑을 퍼다 주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차라리 한쪽이 전적으로 다 맞춰주고, 나머지 한 사람은 그것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이 더 쉬웠다)
그와 나는 같은 상황을 겪으면서도 서로 다르게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식대로 이해했다.
신기하다 싶을 정도로 50/50 확률로 2가지의 선택지가 있으면 각자 서로 다른 것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나와 다른,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모두 가진듯해 보이는 그가 너무 매력적이었다.(물론 지금도 너무 사랑하고, 매력적이지만)
하지만 서로 너무 다른 성격 탓에 시간이 흐를수록 함께 선택해야 하는 것들에 있어 충돌이 잦지 않게 일어났다.
'이해한다'라는 말도 결국 상대방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와 상황, 감정을 오로지 상대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잣대로 이해한다는 꼴이 되어버리니, 그와 나의 간격을 좁히기 위해서는 서로 인정하는 자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로가 서로의 주장만 펼치다 보면, 결국 대화의 끝은 아픔과 상처만 남는다.
내 기준에서 이해가 도무지 되지 않는 상대방의 의견에 스스로 "왜?"라는 물음보다는 "아~"라는 인정과 공감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작은 충돌도 가벼운 두통으로 끝낼 것인지, 극심한 고통으로 끝낼 것인지에 대해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세월 붙어 지내게 되면, 충돌은 당연히 일어날 수 있다.
그런 충돌에 대해 서로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는 커플과 우린 결국 서로 맞지 않다는 '결과'로 받아들이는 커플의 차이는 결국 견고한 사랑 또는 이별의 아픔을 낳는다.
떡볶이를 먹을 때 떡만 먹는 나, 어묵만 먹는 당신이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것을 독점할 수 있는 조화 속의 기쁨처럼, 우리가 서로 많이 다르지만 그만큼 더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닐까
내 부족한 부분을 모두 채워줄 수 있는 그에게 항상 감사하다.
사진은 그와 스위스 이젤발트 브리엔츠 호수에서 본 우리와 꼭 닮은 백조부부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