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빠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기분은 참 오랜만이다. 이 감정을 느낀 지, 20년 정도 되었나.
아빠를 생각하면, 어렸을 때 가족이 함께 갔던 수련회의 밤이 떠오른다. 낯선 밤, 어두컴컴한 산에서 호랑이가 아빠를 잡아가진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이 있다. 내 기억 속 그때 즈음엔, 분명 아빠를 사랑했던 것 같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엄마의 기억 속에 어린 나는 아빠의 배 위에서 빵긋 빵긋 웃었다고 했다. 아빠 배에 올라타고 앉아, 작은 손가락 내어 ‘아빠 눈’ ‘아빠 코’할 때, 아빠도 나를 무척 예뻐했다고. 한창 아빠와의 갈등을 겪을 때 엄마가 푸념하듯이 말했었다.
사춘기 어린 자식은 참 무섭다. 방문을 닫기 시작해서가 아니다. 신 같았던,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부모의 흠과 한계, 결점을 자식이 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자식은 부모에게로부터 나왔기에, 누구보다 부모를 잘 안다. 유전적 약점이든, 심리적 취약함이든. 부모가 인간으로 숨기고 싶었던 혹은 무의식에 눌러두었던 부끄러움을 자식은 마주하게 한다. 자식은 어리기 때문에 마주하게 하는 방식마저 미성숙하고 잔인하다. 내가 그랬다.
아빠가 싫었다. 무능력한 자기를 마주하지 않고, 등 돌려 누워 버리는 아빠가. 아빠보다 더 똑똑하고 능력 있던 나를 통해, 부족한 자신의 자존감을 채우는 아빠가 당시엔 비겁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건 옳지 않다며 소리 질렀다. 그때의 나를 변명해 보자면, 나도 어려서. 아빠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 못했다. 성난 짐승처럼 나를 공격하는 어른이 치사하다며 서툴고 날선 말들로 아빠를 몰아 세우곤 했다.
시간이 지나 아빠가 늙었다. 지난 주말 다 큰 자식의 집에 부모님이 놀러 왔다. 먼 지역에서, 혼자 어떻게 사나 보려고, 관광 핑계 삼아 오셨다. 한여름의 멋진 풍경을 봐도, 이젠 예전만큼 아빠가 걷지 못한다. 금방 지치고, 더 쉽게 포기한다. 여기까지 봤으면 되었다며, 자꾸 자리를 찾아 앉는다.
지난밤, 그런 아빠를 어린 시절보다 세련된 방식으로 다 큰 내가 다그쳤다. 아빠가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도록, 나는 아빠의 어떤 ‘삶의 태도’가 이토록 싫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때의 아빠의 표정은, 어렸을 적 봤던 것처럼 할 말이 없어 보였다. 다만, 나이가 더 들어, 이젠 조금 지친 걸까. 체념한 걸까. 언제부턴가 아빠는 과거를 쏟아내는 나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한다. ‘그때 아빠가 미숙해서 미안하다.’고. 그럴 때마다 조금 허탈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다시 또 이야기를 꺼내는 건, 내 안의 어린 내가 회복하고 싶어 하는 것임을 나는 안다. 그래서 늙은 아빠의 사과를 어린 내가 받는다.
뜨거운 여름 관광을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수제비 집에 갔다. 엄마가 날이 더우니 동동주 반 되를 시키자고 해서 가족들끼리 나눠마셨다. 예전이면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아빠가 ‘가족과 함께 있는 지금이 행복이지. 행복하다.’라고 웃었다. 비싸지 않은 수제비였지만 지난밤 화투에서 오천 원 딴 아빠가 내겠다며 결제를 하셨다. 늙은 아빠가 뿌듯해했다.
가족들이 돌아가 고요해진 나의 집에서 아빠를 생각했다. 아빠에게서 사소한 일에도 행복해하며 웃는 ‘나’를 본다. 소소한 행복의 감각을 물려준, 혹은 가르쳐준 아빠가 고마웠다. 인간적인 그가 참 사랑스럽다는 마음이 들었다. 사랑하는 나의 아빠가, 좀 더 오래 건강하게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