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모든 ‘처음’에는 감정이 얽혀 있다.
긴장, 떨림, 설렘.
나는 처음을 좋아한다.
첫 걸음마, 첫 연애, 첫 키스, 첫 섹스. 그리고 죽음.
밤이었다.
달은 없었고, 골목은 조용했다. 벽돌 건물 사이로 스며든 어둠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숨소리를 죽이니, 바람 소리마저 선명하게 들렸다.
그때였다.
앞쪽에 무언가 쓰러져 있었다.
작은 고양이 한 마리였다.
축축한 몸, 희미한 숨결, 부자연스럽게 꺾인 다리. 가느다란 입이 열렸다 닫혔다. 희미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살아야 한다는 몸부림이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손을 뻗었다.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자, 창백한 가로등 불빛이 그 눈동자에 스며들었다. 작은 점이 흔들리며 빛을 삼켰다. 그 순간이 좋았다.
나는 그 눈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죽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개구리를 짓밟으면 사지를 펄떡이다 멈춘다. 개미는 몸이 두 동강 나도 한동안 움직인다. 바퀴벌레는 머리가 없어도 며칠을 산다.
하지만 결국엔 죽는다.
마지막 순간, 모든 생명은 저항한다.
그리고 그 눈을 보면 안다.
나는 그 순간을 사랑한다.
그날도 그랬다.
고양이는 곧 죽을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
그런데,
“뭐 하는 거야?”
낮고 젖은 목소리.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골목 저편, 한 소년이 서 있었다.
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헝클어졌고, 손에는 봉지가 들려 있었다. 아직 덜 자란 듯한 얼굴이었지만, 눈빛은 날카로웠다.
소년은 내 앞의 고양이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에서 고양이의 마지막 체온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소년이 한 걸음 다가왔다.
“네가 죽였어?”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아니.”
소년은 내 표정을 읽으려는 듯 가만히 서 있었다.
봉지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희미한 비닐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거짓말이야.”
나는 웃었다.
“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잖아.”
소년의 눈빛이 변했다.
단순한 의심이 아니라, 무언가 더 깊은 감정.
나는 그 눈빛을 알고 있었다.
죽어가는 것들을 바라보는 게 왜 이상한 일이냐고,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그 순간이야말로 가장 솔직한 순간인데.
소년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살아 있네.”
소년은 아주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들어 올렸다.
나는 그 순간을 지켜보았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미약한 생명의 흔들림.
그것을 놓아야 하는지, 지켜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
나는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
“어차피 곧 죽어.”
나는 낮게 말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그의 품 안에서 고양이가 작게 숨을 쉬었다.
소년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직 살아 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왜인지 짜증이 났다.
소년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골목을 빠져나갔다.
나는 그 자리에 남았다.
골목은 조용했다.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걸 좋아했던 걸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어린 시절, 어두운 방에서 들려오던 숨소리.
방문 너머에서 흐르던 낮은 목소리들.
부드러운 손길과 날카로운 손길이 교차하던 기억들.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생각하기를 멈췄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다음을 찾으면 된다.
그날 밤, 나는 다시 거리로 나왔다.
더 어두운 골목이었다.
그런데.
“또 만나네.”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거기, 소년이 서 있었다.
그 품 안에서 무언가 움직였다.
고양이였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살아 있었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손을 뻗었다.
“줘 봐.”
소년이 몸을 움찔했다. 그러나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이제 필요 없잖아.” 나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죽을 거라고 했잖아. 그럼 그냥—”
“넌,”
소년이 끊어 말했다.
“넌 죽이는 게 좋아?”
나는 피식 웃었다.
“죽는 게 좋아.”
소년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조용히 물었다.
“그럼, 너는 죽을 때 어떤 눈을 뜰까?”
나는 순간 멈칫했다.
소년은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다.
마치 내가 마지막 순간을 맞이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이라도 하는 듯한 눈빛으로.
이상했다.
나는 처음으로 불안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그날 밤, 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강가.
나는 소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소년이 나타났다.
그의 품 안에는 고양이가 없었다.
나는 물었다.
“살았어?”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에 데려갔어. 살았어.”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운이 좋았네.”
소년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여전히 신경 쓰였다.
나는 짜증이 나서 웃어버렸다.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넌 진짜 죽음을 본 적 있어?”
나는 피식 웃었다.
“무슨 뜻이야?”
소년은 속삭였다.
“네가 본 건 정말 죽음이었어? 아니면, 그냥… 사라지는 순간이었을 뿐이야?”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소년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소년의 눈에는,
내가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거울 속의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그곳에 있던 것은 나였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아니었다.
거울 속의 나는,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첫눈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