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밤
편의점 유리문이 밀려 열리자, 싸늘한 밤공기가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겨울은 아니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문턱을 스치며 플라스틱 간판을 덜컥이게 했다. 사람들은 대개 이곳을 스쳐 지나갔다. 값싼 도시락을 사고, 담배를 사며, 휘발성의 대화 몇 마디를 흘리고는 사라졌다. 마치 존재했다는 흔적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듯이.
하지만 편의점의 밤을 지키는 자는 사라질 수 없었다.
계산대 안쪽, 회색 바지를 입은 알바생이 서 있었다. 바지는 원래 그 색이 아니었던 것 같았다. 얼룩과 먼지, 시간의 퇴적물이 뒤섞여 어떤 색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웠다. 긴 머리칼은 흐트러져 있었고, 기름기와 먼지가 엉켜 뭉쳐 있었다.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얼굴, 그 이마에서 눈썹 아래까지 깊은 상처가 나 있었다. 아물어가는 살점 사이로 아직도 붉은 피딱지가 남아 있었다.
손님들은 그녀를, 혹은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다. 그냥 물건을 사고 떠날 뿐이었다. 다만, 그녀가 컵라면을 정리하기 위해 몸을 숙일 때, 혹은 바닥의 쓰레기를 줍기 위해 허리를 굽힐 때, 간혹 지나가던 사람들이 슬쩍 곁눈질을 했다. 마치 쓰러진 길고양이를 보는 듯한 눈길로.
그러나 그 시선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차피 그녀 자신도 거울을 보지 않았다. 거울을 볼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어릴 때, 사람들은 그녀를 “공주님”이라 불렀다. 부모는 그녀를 예쁘게 꾸며주었고, 친척들은 그녀를 안아 올리며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일은 한순간에 벌어지고,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녀는 기억하고 있었다. 차가운 손길,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 울어도 아무도 듣지 않던 밤을.
그날 이후, 거울 속의 자신을 볼 수 없었다. 보지 않기로 했다. 머리카락은 감지 않았고, 몸을 돌보지 않았으며, 누군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보지 않는 것이었다. 한 달이 지나도록 씻지 않은 머리칼, 흐트러진 옷, 그리고 손끝에 남은 담배 연기의 잔향. 그것이 지금의 그녀였다.
“총 4,500원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다. 계산대 너머에서 손님이 카드를 내밀었다. 그녀는 습관처럼 카드를 받아 결제기를 찍었다. 삑 소리가 울렸다. 손님은 말없이 카드를 챙기고 돌아섰다.
그렇게 하루가 흘러갔다. 아니, 한 시간이, 한 순간이, 한 생이 흘러가고 있었다.
편의점의 불빛 아래, 밤은 언제나 차가웠다.
새벽 두 시, 편의점의 자동문이 다시 열렸다. 차가운 공기가 발목을 감쌌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담배를 사러 온 것 같았다. 후드가 깊숙이 눌러쓴 모자 밑으로 어둠 같은 눈이 보였다. 오랫동안 씻지 않은 손톱이 바코드가 찍힌 담배 상자를 움켜쥐었다.
“ 말보루 레드 하나 줘.”
그녀는 말없이 선반에서 담배를 꺼냈다. 남자의 손과 닿지 않으려 일부러 더 멀리 내밀었다. 남자는 그것을 낚아채듯 가져갔다.
“라이터는?”
그녀는 검은색 라이터를 한 개 밀어주었다. 손가락이 가늘었다. 그러나 그 안에 어떤 물기도 없었다. 피곤과 오래된 체념, 바싹 말라버린 감정이 그 안에서 부서질 듯 흔들렸다.
남자는 돈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말없이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뒷모습을 보지 않았다.
편의점 안에는 간단한 정적이 흐르고, 인공적인 형광등 빛이 그녀의 회색 바지를 비췄다. 어쩌면 처음에는 흰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더러움이 너무나 깊이 배어 원래 색을 떠올릴 수도 없었다.
거울을 볼 필요가 없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손님이 없는 틈을 타 그녀는 잠시 밖으로 나갔다. 한 발짝만 나가도 공기가 달랐다. 편의점 내부의 따뜻한 냄새와 플라스틱 포장지 냄새 대신, 차갑고 선명한 밤공기가 피부를 감쌌다.
담배를 꺼내 들었다. 성냥을 그었다. 바람이 불어 불꽃이 흔들렸다. 꺼질 듯하다가 겨우 살아남은 불길이 종이 끝에 닿았다.
한 모금 들이마셨다.
연기가 폐를 타고 가라앉았다. 온몸에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한 순간, 아주 짧은 순간,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듯한 감각.
그녀는 오래전 그날을 떠올렸다.
거울을 마주한 마지막 순간.
그날, 거울 속에 비친 것은 소녀가 아니었다.
어릴 때, 그녀는 공주라고 불렸다. 부모는 그녀에게 분홍색 드레스를 입혔다. 머리에는 예쁜 리본을 달아주었고, 사람들은 그녀를 보고 감탄했다.
그런데 어느 추운 겨울 , 거울 속에서 그녀를 바라보던 것은 공주가 아니었다.
소녀는 울고 있었고, 빨간 상흔이 이마에서 눈썹아래로 찢어져 있었고, 소녀는 공허하게 벌어진 입술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이후로, 거울은 필요 없었다.
새벽 세 시.
편의점 앞에는 누군가가 버린 컵라면 용기가 나뒹굴고 있었다. 숟가락이 반쯤 빠져나온 채 쓰레기 봉투 위에 걸쳐져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내려다보았다.
한때는 따뜻했을 국물, 채 익지 않은 면발, 대충 찢겨나간 스프 봉지가 떠올랐다.
그녀는 컵라면을 집어 들었다. 묵직한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다.
새벽 네 시가 되면 점장이 올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교대를 하고, 아침의 햇빛을 피해 어딘가로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밤은 끝나고, 그렇게 또다시 밤이 올 것이다.
그녀는 쓰레기 봉투에 컵라면 용기를 던져 넣었다. 비닐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편의점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