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집

내일 세상이 끝난다면?

by 박요한

불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내일 끝난다면.

많이 가진 사람이 더 슬플까?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 더 슬플까?


나는 신이다.

하느님이라고도, 부처라고도,

알라라고도 불리는 존재.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나를 찾는다.

시험 직전, 실연 직후, 혹은 주차 자리 없을 때.


그날은 특별히 심심했다.

우주는 조용했고, 인간들은 바빴다.

그래서 작은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종말을 하루 앞둔 지구에서

두 명의 인간을 지켜보는 실험.

하나는 넘치게 가진 사람.

하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


둘 중 누가 더 슬플까?


2.


첫 번째 인간은 S.

펜트하우스에 살고,

자신의 요트에 이름을 붙인 남자.

고급 시계를 모으고, 스스로를 브랜드라고 소개한다.


그는 뉴스를 보다가 말했다.

“세상이 끝난다고? 그럼 내 주식은?”

잠시 멈추더니, 다시 물었다.

“내 명품 컬렉션은? 와인 저장고는?”


그는 그날 밤까지

자신의 유산을 어떻게 분배할지 계산하고,

코인을 하드월렛에 옮기다가 잠이 들었다.


한 손엔 USB,

다른 손엔 샴페인 잔.

축배도, 위로도 없는 마지막 밤이었다.


3.


두 번째 인간은 R.

버려진 컨테이너에서 산다.

전기장판도, 따뜻한 물도 없다.

하지만 작은 노트에 시를 써내려간다.


“내일이 마지막이라면…”

그는 조용히 말했다.

“조그만 화분 하나라도 남기고 싶네요.

누가 그걸 보며 웃을 수도 있으니까.”


그날 그는

플라스틱 컵에 흙을 담고

종이에 “잘 자라요 :)”라고 써서 붙였다.


마지막 밤, 그는 혼자였지만

외롭진 않아 보였다.

그가 만든 화분이 창가에서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4.


나는 그 둘을 바라보며

웃고, 또 생각에 잠겼다.


S는 마지막까지 ‘보유’를 지켰고,

R은 마지막까지 ‘남김’을 생각했다.


S는 유산 목록을 정리했고,

R은 아무도 받지 않을 선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세상은 조용히 끝났다.

불꽃도, 지진도 없었다.

그냥, 다음 날이 오지 않았다.


S는 잠든 채로,

R은 화분 옆에 기대어.

둘 다 조용히 사라졌다.


5.


남은 건 딱 두 가지.

S의 금고 열쇠와

R이 만든 작고 흔한 화분 하나.


나는 한참을 바라보다,

작은 결론을 적었다.


많이 가진 자는 잃는 걸 두려워했고,

가진 게 없는 자는 남기는 걸 꿈꿨다.


슬픔의 크기는 가진 것과 비례하지 않는다.

슬픔은,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6.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다음 생엔 인간으로 태어나 보기로.


부자도, 시인도 아닌

그저 작은 동네의 책방 주인쯤.


책을 추천하고,

때로는 손님에게 따뜻한 차를 건네고,

창밖에 내리는 비를 보며 문을 닫는 밤.


그리고 조용히 누군가에게 물어볼 것이다.


“세상이 내일 끝난다면요,

당신은 뭘 남기시겠어요?”


그 질문이 사람들을 멈추게 하고,

내가 신이 아닌 인간이 되었단 걸

스스로도 잊게 만들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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