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단편집

바다

by 박요한

그게 시작이었다.

매번 같았던 하루.

친구들과 마시던 술, 웃음 섞인 이야기,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버스.


창밖은 아직 덥고,

에어컨 바람은 그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뉴스에선 “역대급 폭염”이라는 말을 되풀이했고,

누군가는 “전기장판을 덮고 이불을 또 덮은 날씨”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훈에게 그 더위는

온도 때문이 아니었다.

오래전부터 무언가 어긋나 있던 삶.

조금씩 바람이 샌 풍선처럼,

그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그날 버스 안에서 그는 조용히 물었다.

“나는 언제 마지막으로, 정말 행복했지?”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무언가에 마음이 두근거리던 때.

숨을 깊이 들이쉬고, 아무 생각 없이 푸른 물속으로 들어가던 순간.

햇빛이 수면을 통과해 흔들리던 풍경.

물고기들이 아무 말 없이 곁을 스쳐가던 그 조용한 세계.


그는 바다를 생각했다.


올해 들어 한 번도 가지 못한 바다.

그는 자신이

자신이 좋아하던 것들을

잊고 살고 있었단 걸

그제야 깨달았다.


그리고,

조용히 결심했다.

다시, 바다로 가야겠다.




며칠 후,

그는 짐을 쌌다.

다이빙 마스크, 슈트, 오랜만에 꺼내 본 장비들.

처음 바다를 만났을 때처럼 설레는 마음은 없었지만,

그 대신

무언가를 되찾고 싶은

조용한 의지가 있었다.


해변에 도착한 그날은

햇살이 무척 투명했다.

모래는 따뜻했고, 바다는 조용히 밀려왔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여훈은 파도 속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물속은

기억보다 더 맑고,

생각보다 더 조용했다.


처음엔 어색했다.

하지만 이내, 몸은 예전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깊이 들어갈수록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그의 마음도 차분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그는 물속 어딘가에서

작은 문 하나를 보았다.


바닷속 바위 사이,

마치 오래전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조심스레 열려 있는 문.

그 문 너머에는 빛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햇살이 아닌,

기억처럼 느릿하고 따뜻한 빛.


그는 문을 통과했다.




문 너머의 세계는 조용하고,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였다.

물고기들은 노래를 부르듯 유영했고,

산호는 마치 나무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그곳에서 여훈은

오래 잊고 있던 기억을 만났다.

아버지와 함께 걸었던 바닷가,

처음 다이빙을 배웠던 날의 떨림,

한때 사랑했던 사람의 웃음소리.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처음 알게 되었던 순간들.


그 모든 기억이

물방울처럼 피어올라

그의 주위를 감쌌다.


그는 울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웃었다.


그는 이제 알았다.

행복은 찾아가는 게 아니라,

다시 만나는 거라는 걸.




잠시 후

그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몸은 젖어 있었지만, 마음은 말라 있었다.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고,

바다는 여전히 조용했다.

그는 바다를 한 번 더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이제 다시 시작하면 돼.”


그 여름,

여훈은 바다를 기억했고,

바다는

여훈을 다시 안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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