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밖에서 내 일 찾기
우리가 멀쩡한 직장을 놔두고,
자꾸만 N잡으로 눈을 돌리는 이유는
내가 할 일을 내 손으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5년간 다녔던 첫 직장을 그만두던 날, 나는 옮겨 갈 곳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게 뭔데?', '갈 곳은 정했어?' 하는 주변 사람들의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일들을 모두 내려놓지 않고서는 달리 다른 일을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장을 그만두자, 그제야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돌아볼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내 손에 고삐를 쥐고 여러가지 일들을 탐색했던 기억이 난다. 3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각각의 활동은 나름의 경로를 따라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에는 N잡이라는 개념도 희미했지만, 내가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시도 1) 자비출판 → 출판사 서평단 활동 → 브런치 성장
시도 2) 각종 마케팅 서포터즈 활동 → 인스타그램 성장
시도 3) 로고 디자인 아웃소싱 →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
Myself, Tomorrow
나의 첫 N잡 플랫폼은 크몽이었다. 2020년 4월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올린 프로젝트가 배너 광고로 돌아, 3건의 의뢰를 연달아 수행하고는 구남친(현남편)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해도 N잡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플랫폼이 희소했다. 크몽에서는 손품을 팔아, 제안을 많이 보내는 만큼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다. 2년 만에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니, 카테고리가 더 다양해져 있었다.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일하기
돈과 시간 모두 자유를 얻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자유를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전문성(소위 말해 내가 몸담고 있는 분야의 짬바)이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생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가 생기는 것이다.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선 해당 분야에 대한 높은 이해도와 쌓아온 경험을 토대로 갖는 확신이 중요하다. 이런 것들이 갖추어졌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자유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2년 만에 다시 찾은 고향(?)에는 전에 없던 카테고리가 추가되어있었다. 가장 먼저 [N잡∙커리어] 카테고리가 눈에 들어왔다. 전문성만 있다면, 하나의 재능에서 그치지 않고 가지를 넓히고 확장하며 다양한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과거에는 주로 트위터에서 랜선 사수 존잘님들의 인사이트를 줍줍 하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커피챗이나 멘토링을 통해 커리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많이 생긴 것 같다.
가장 비싼 재화는 '생각'이 아닐까. 잘 짜여진 생각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형태의 영상이나 글 혹은 강연의 형태로 팔리며, 그것을 접한 사람들에게 2차, 3차 파장을 일으킨다. 이 생각을 잘 파는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기 주도적으로 일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크몽의 '노하우'와 '직무역량'카테고리를 눈여겨보았다. 언젠가 나도 그 영역에 발을 딛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본진을 기반으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일이 크몽의 생태계 안에서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몽 이후로 다양한 N잡 플랫폼들을 접했다. N잡을 향해 타오르는 우리의 열망만큼이나, 플랫폼들의 수요/공급자 유치전도 치열했다. 저마다 앞다투어 크리에이터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는지를 내세운다. 그중에서 눈에 띄는 전략은 '클라이언트와 조율은 플랫폼에서 할 테니, 디자이너는 작업에만 집중하세요!'였다.
플랫폼에서 클라이언트를 핸들링해주는 것에는 장단점이 있다. 플랫폼에서 100% 핸들링을 해주는 경우, 크리에이터는 오롯이 작업에만 리소스를 쓸 수 있다. 어떤 테크트리를 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연차가 올라가는 만큼 다양한 능력을 요구받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첫 N잡 플랫폼이 크몽이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다양한 클라이언트와 직접 부딪히며 여러 대응방법들을 몸소 익힌 덕분에 이후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기력이 달려서 플랫폼에서 100% 핸들링해주는 프로젝트에 마음 편히 승차하는 것을 선호하긴 하지만
디자이너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돈 떼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크몽에서는 프로젝트가 시작됨과 동시에 클라이언트가 플랫폼에 대금을 예치한다. 프로젝트 진행 중에 추가 작업이 들어가는 경우, 추가 경비의 발생을 고지하는 사용자 경험에 대해서도 많이 신경을 쓴 것 같았다. 이런 시도들이 '추가 작업=추가 경비가 들어간다.'는 인식을 시장에 심어주는데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거 간단한건데, 이것 까지만'으로 시작되어, 한 달이 넘어가는 봉사의 시간들을 견뎌야했던 경험이 있는가? 불과 2년 전만 해도 이런 일들이 종종 있었지만, 요 근래 들어서는 계약 내용을 넘어서는 일을 하게 되는 경우, 클라이언트 쪽에서 먼저 추가 견적을 제시해주는 모습도 많이 보았다. 시장의 인식도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뀐 것이다. 이런 작은 시도들이 모여 만들어낸 결과이지 않을까.
플랫폼마다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 부분에서 작업자는 플랫폼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된다. 조삼모사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심리적 차이를 느낀다.
클라이언트가 결제하는 금액(=내가 낸 견적) - 수수료 = 내가 받는 금액
ex) 10만원 - 2만원 = 8만원
위와 같은 구조에서는 내가 낸 견적에서 플랫폼에 2만원을 떼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당연히 플랫폼을 통해 내가 누린 것들에 대한 이용료임을 자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클라이언트가 결제하는 금액 = 내가 받는 금액(=내가 낸 견적) + 수수료
ex) 10만원 = 8만원 + 2만원
*이 경우에는 내가 낸 견적은 클라이언트에게 공개되지 않고, 클라이언트는 수수료가 포함된 금액을 확인하게 된다.
반면, 위와 같은 구조에서는 내가 낸 견적에 수수료를 더해서 클라이언트가 결제하는 형태로 내가 낸 견적을 모두 보존받는 듯하다.
올바른 예시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수수료를 부과하는 시점과 형태를 어떻게 포장하느냐에 따라 유저(창작자)의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더 좋은 예시가 떠오르면 나중에 수정해야겠다 ㅎㅎ
그런데, 쓰다 보니까 N잡이라는 개념이 좀 이상하다. 두부언니의 직업이 N개인 것이 아니라, 그냥 두부언니가 곧 직업인 것 아닌가?
끝.
*원고료를 지급받아 작성한 내용입니다.
#크몽 #프리랜서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