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의 일』, 스탠리 피시, 윌북
문장을 열심히도 모으던 때가 있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일명 “감성글귀”를 그러모으곤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출발이었던 것 같다. 잘 쓰여진 문장을 보며 감탄하고 다이어리에 옮겨 적거나 2g 폰의 메모장이며, 3g폰의 앨범에 메모리가 부족해질 때까지 채워 넣었으니까 말이다. 이후에 수능시험 언어영역에서 5등급 받았지만, 문제지 속 지문과 관계없이 활자를 사랑하고 단어를 곱씹어보는 일은 즐거웠던 것 같다.
부끄럽게도 내가 지금 쉼표(,)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까지 들어, 초록창에 검색해보았다. ‘쉼표 사용법’이라고. 물론, 우리는 의도한 바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어순을 바꾸거나 문장에 어긋나는 듯한 단어를 끼워 넣는 등 다양한 시도(이를테면 구어와 같은)를 통해 문장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종종 '과연 기본은 지키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에 다다르곤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저자인 스탠리 피시가 형식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훌륭한 문장이라면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울린다(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는 것이 전반적인 그의 견해지만, 키보드 앞에 앉아 되는대로 자판을 두드리던 시간들이 부끄럽게 다가오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글을 쓰다 보면, 어떤 내용을 쓸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지만, 그 형식을 고민하는 일은 비교적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림을 모작하듯이 잘 된 문장을 모작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의 손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필사는 여러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으나, 그 문장의 구조와 형식을 뜯어보고 관찰해 볼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쩐지 글쓰기(꿈나무)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확실히 욕심이 나긴 한다. 저자인 스탠리 피시가 말하는
‘써본 적 없는 문장’
강바닥에는 자갈과 바위가 있었다, 햇볕에 말라 허예진 돌들, 그리고 맑고 빠르게
흐르는 물, 물길은 군데군데 푸른색이었다.
맑고 속도감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다. 바닥에 깔린 그 의도가 투명하게 보일 정도로 맑고, 서두를 뗀 순간 결론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내리 닫는 문장을 좋아한다. 의식의 흐름 기법(stream of consciousness)이 우스겟 소리에서 출발한 말이 아니었다니. 우리는 문장을 자연스럽게 읽어 내려가다, 결국 화자가 말하고자 하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그렇게 또 한 문장 소화해냈다는 사실에 기쁨을 느낀다. 문장이란 비로소 읽혔을 때(글을 쓴 저자를 포함하여) 그 존재의 의미가 있다. 글은 읽히기 위해 작성된다. 그리고 그렇게 작성된 글은 누군가의 눈으로 혹은 마음으로 읽혔을 때, 본래보다 더 자라난 형태가 되거나 혹은 조금 다른 모양을 띄기도 한다.
그저 흐름에 몸을 맡긴다. 인생이건 글이건,
사건과 대상을 질서 정연한 관계 구조에
끼워 넣으려고 흐름을 멈추지 말지어다.
어쩌면, 디자인이 시각적인 콘텐츠를 다루는 분야라는 말이 어색할 정도로 글을 다뤄야 했던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우리는 좋아하는 영역에 대해 어휘가 비약적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자연과학자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이고, 사회과학자는 이 사회의 세포로써 일하는 우리에 관해 이야기할 것이다. 하지만 둘이 이야기하는 바는 사실 크게 다르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어떻게 하면 우리가 더 나은 환경에서 덜 끔찍한 일을 할지 말지에 대해 고민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시작은 각기 다를지언정, 분야를 막론하고 어떤 한 기조를 중심으로 마주치게 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문장의 일』에서는 말 그대로 ‘문장’에 관한 이야기라면 형식과 내용을 막론하고 잘 짜여진 문장을 모아 정갈히도 소개해놓았다. 모든 일의 첫 경험은 대게 무지하지만, 이해의 정도는 기울인 관심과 시간에 비례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흘러온 시간과 나아갈 시간을 가늠하지 않고 쓰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작은 물줄기를 따라 큰 강의 흐름에 닿는 순간도 맞이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