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파란 이유는 하늘을 품었기 때문이랬다.
drop 02
물속으로 다이빙
Topˏˋbergamotˏmelonˏlemonˏlavender
Midˋˏmarine accordˏgeraniumˏnutmegˏcardamom
Baseˏˋmuskˏcashmereˏpatchouliˏamber
바다가 파란 이유는 하늘을 품었기 때문이랬다. 밀려오는 파도와 쓸려가는 모래가 만나는 지점에선 하얀 물보라가 일었고 파란 하늘엔 군데군데 하얀 구름이 일었다. 하얀 물보라도 구름도 가는 시간을 붙들지 못해 O의 근처에 섰다가 저 바위 너머로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찾아 볼 수 있는 흔적이라곤 그가 서성일 때 백사장에 찍힌 몇 개의 발자국뿐이었다. 백사장에는 그의 키 만한 바위 몇 개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꾸만 사라져 가는 물보라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해변의 모래는 나이를 먹을수록 작아진다. 파도에 쓸려 오가기를 반복하는 모래 알갱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또한 물보라가 되어 사라질 것만 같은 기분이 되었다.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O의 셔츠 깃을 세웠다. 그는 아침 식사를 먹기 전에 산책을 나온 참이었다. 공복에 들이쉬는 아침 해변의 공기는 시원하면서도 물기가 어려 있었다. 아직 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지만 한 여름의 태양은 제법 따가웠고 따가운 햇살을 피할 만한 그늘은 보이지 않았다. 그늘을 찾아 들어간다면 서늘함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날씨였다. 그는 고개를 떨궈 자신의 맨 발을 바라보았다. 백사장의 모래알보다 더 하얀 그의 발목 언저리에서 파도가 하얗게 부서졌다. 파도가 쓸고 간 발목에는 간간히 모래알이 들러붙어 있었다.
O가 자리를 옮길 때 마다 모래알이 발바닥을 간질였다. 그는 아래로 떨구었던 시선을 들어 수평선 너머로 옮겨 들었다. 오늘따라 파란 하늘을 품은 바다가 유난히도 투명하게 펼쳐져 있었다. 바다는 투명했기 때문에 파란 하늘을 그대로 품을 수 있었으리라. 너무도 맑아 그 깊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지구 반대편의 어느 호수가 떠올랐다. 세상에서 가장 깊다는 그 호수는 얼마나 많은 이들을 품었을까. 그는 나르키소스가 된 듯한 기분으로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아무래도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선 조금 더 깊은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물 아래에서 걸음을 옮기자, 백사장에 찍혔던 발자국이 자취를 감췄다. 물 아래로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발자국이 사라지는 간격은 짧아지더니, 어느새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저 위에 백사장에 찍어 두었던 발자국도 파도에 쓸려 곧 모습을 감출 것이다. 발자국이 옅어질수록 수면에 비친 O의 얼굴은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 호수의 깊이가 어느 정도라고 했더라 50m였던가. 아, 가장 깊은 곳은 100m가 넘는다고 들었던 것 같다. 지금처럼 두 발로 걸어 들어간다면 고작해야 1m 언저리밖에 내려가지 못하겠지. 마음을 조금 더 굳게 먹는다면 2m까지도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제 물은 O의 가슴까지 차올랐다. 바다의 짠 내음이 아까보다 더 강하게 느껴졌다. 가슴까지 차오른 바닷속에서 파도를 견디며 서 있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중심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어느 방향으로든 고꾸라질 것만 같았다. 그는 그대로 바다에 누웠다. 가슴 가득 숨을 들이쉰 채로 수면 위에 등을 대고 누우니 파란 하늘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파도가 너울짐에 따라 간간히 양 옆으로 하얀 파도가 시야에 걸렸다. 하늘을 품은 바다는 여전히 파란색이겠지. 하늘을 품은 그는 아마도 하얀색일 것이다.
Noteˏ
해변 / 구름 / 아침 / 백사장 / 하얀 발목 / 목덜미
이른 아침의 백사장이 떠오르는 향입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이른 아침, 바닷가에 맨 발로 나가 하얀 모래사장을 밟으며 거니는 듯한 기분이 들어요. 좀 더 이해하기 쉽게 풀어쓰자면, 우리에겐 남성 스킨향의 이미지로 더 익숙한 향입니다.
탑노트의 멜론과 미들 노트의 구성(marine accordˏ geraniumˏnutmegˏcardamom)이 흔히들 말하는 '물향'의 느낌이 들게 하는 것 같아요. 마무리의 패출리가 주는 캐릭터가 독특하고 중독성있습니다. 전반적으로 깔끔하고 시원한 느낌의 향입니다.
*이 글을 paffem의 'drop02. 하얀 구름 동동 푸른 물속으로 다이빙'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