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녘 장미 꽃잎으로

옷을 지어 입었다.

by 두부언니


melt 03



Topˏˋ pink pepperˏ rose

Midˋˏ roseˏ raspberry blossom

Baseˏˋ papyrusˏ amber





동틀녘 장미 꽃잎으로 옷을 지었다. 지난 장맛비에 목이 꺾여 바닥에 나뒹군 적이 있는 장미였다. 바닥을 구르던 하얀 장미 꽃대를 집어 들었다. 꽃대를 집어 든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근방에 하얀 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꽤 멀리서 목이 꺾인 채로 여기까지 굴러온 모양이다. 열 발자국 정도 앞에 붉은 장미가 간간히 고개를 내민 수풀이 보였다. 나는 하얀 장미꽃을 붉은 장미대에 접붙였다. 남의 장미 꽃대에 접붙은 채로, 여름이 끝날 무렵까지, 하얀 장미는 잘 버텨주었다.


여름이 다 가기 전에 장미꽃을 모조리 꺾어 들였다. 장미의 색은 각양각색이었지만, 하나같이 어딘가 사람의 피부를 닮은 듯 보였다. 나는 도톰한 장미 꽃잎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꽃잎의 한 꺼풀 아래에 실핏줄과 같은 것들이 얼기설기 얽혀있었다. 그리고 새벽이 다 가기 전에 그것들로 옷을 지어 입었다. 동이 틀 즈음에는 이미 그것들이 내 피부를 온통 휘감고 있었다.


점차로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낼수록 촉촉이 내려앉았던 새벽 이슬이 아지랑이가 되어 공중으로 피어올랐다. 피부를 휘감은 장미 꽃잎과 살결의 사이에 있었던 물기 또한 마르기 시작했다. 새벽 공기가 사라짐에 따라 그것은 몸에 한층 더 강하게 휘감겨왔다.



이제 장미꽃잎은 원래의 피부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이제야 내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도, 어딘가 남의 옷을 얻어 입은 것과 같은 위화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햇살이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나와 허벅지 위에 내려앉았다. 촘촘히 드리우는 나뭇잎의 그림자는 코바늘로 정교하게 짜 놓은 얼개 같아 보였다. 햇빛을 받는 각도에 의해 허벅지는 은색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보는 방향을 달리함에 따라 창백한 보라색과 온화한 산호색이 언뜻언뜻 비치는 듯도 했다.


여름이 끝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대로 목대가 잘려 바닥에 나뒹구는 장미처럼 가을을 맞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건 마치, 손톱 밑에 박인 가시에 대해서는 미주알고주알 이야기하다가, 정작 큰 병이 닥쳐왔을 때, 입 한번 벙긋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이제 해는 중천에 떠 있다. 새벽 공기는 사라졌다. 허벅다리에 장미 꽃잎이 달라붙었다. 이대로 가을이다.





Noteˏ
살결 / 장미

papyrus의 풀(혹은 허브) 향 때문인지 마냥 연분홍의 장미 느낌은 아니다. 남편에게 시향 해주었는데, 살 냄새에 가까운 장미향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장미향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파펨의 melt 03은 설명만 읽고 지레짐작으로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캐릭터였다.

너무 달아서 질리거나,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느낌의 장미향이 아니다. 약간 섞여 있는 풀향 때문일까, 사람의 살에서 장미향이 난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이 글은 paffem의 'melt 03. 로맨틱 로즈'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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