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씨앗을 심지 않아도, 싹은 돋아 나고
drop 05
풀잎 위 아침이슬
Topˏˋ bergamotˏ lemonˏ petitgrain
Midˋˏ green teaˏ muguet
Baseˏˋ muskˏ amber
벨은 이제야 정수리 위에 위치한 해를 올려다보았다. 이른 아침부터 정원의 채마밭을 돌보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었는데, 해는 벌써 정오를 가리키고 있었다. 키가 큰 장미 덤불이 있는 정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채마밭을 훑고 지나갔다. 소년은 코 끝을 지나는 바람에서 녹색의 꽃향을 느꼈다. 아마도 그의 부모가 상록수 정원에서 키가 풀들을 정리하던 참이었으리라.
갓 베어낸 줄기에서 나는 싱그러움이 바람을 타고 소년을 스쳐갔다. 소년은 다시 무릎을 구부려 쪼그린 자세로 앉아보았다. 소년의 키보다 조금 작은 아보카도 나무 아래 초록색 열매가 간간히 매달려 있었다. 하늘에 닿을 듯 뻗어 있는 다른 나무들에 비하면 비교적 열매를 맺는 시기가 이른 편이었다. 작은 몸집으로 열매를 맺는 나무가 대견하여 소년은 열매가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며, 괜히 손가락으로 건드려보았다. 열매의 표면은 오돌토돌하지만 매끈했다.
채마밭은 넓었기 때문에 소년의 손이 닿지 않는 구석이 군데군데 있었다. 저택으로 난 길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잡초들은 무성히 자랐고, 수확의 시기를 놓친 열매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애당초 벨의 부모는 소년에게 채마밭을 완벽히 가꿀 것을 지시하지 않았다. 밭에서 길러지는 채소의 종류나, 수확되는 채소의 양에 대해서도 전적으로 소년에게 일임했다. 더군다나 바닥에 떨어진 열매는 또 다른 싹을 피워낼 일이니, 소년은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
애당초 그 작은 손으로 이 거대한 채마밭(주인 부부 방 크기의 족히 열 배에 달하는 듯 한)을 완벽히 가꿔 낼 마음도 없긴 했다. 게다가 이 여름의 정원은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금새 시들어버리기 쉬웠다. 혹은 소년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어제 없던 잡초들이 무성히 자라나는 일도 태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벨은 손을 놓아야 할 부분과 신경 써서 가꿔야 할 부분을 선택적으로 가려내었다. 어쨌든 소년이 손을 놓지만 않는다면, 정원은 분명 무엇이든 되돌려 줄 것임을 소년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소년은 아직 여물지 않은 아보카도를 제외한 다른 채소들을 부지런히 거둬들이기 시작했다. 서툰 손동작이었지만, 소년의 발치에 놓인 바구니에는 밭에서 딴 여린 잎채소와 덤불의 베리들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문득 소년은 바구니가 가득 차 버리면 혼자서 옮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여러 번에 나누어 주방을 오가며 바구니를 옮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벨은 저택에서 일하는 하인의 수를 모두 헤아리지는 못하였지만, 적어도 서너 번 이상 채마밭과 주방을 오가야 할 것 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소년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전날에 서툰 손길로 다듬었던 잡초가 복숭아께를 간질였다. 잘리다 만 잡초들이 샌들 스트랩의 틈 사이로 그의 맨발을 간질였다. 아직 마르지 않은 아침이슬이 소년의 얇은 피부를 적셨다. 소년이 바구니를 메고 저택으로 향하는 길에 나비와 작은 새들이 간간히 소년의 바구니며 주변의 돌담에 앉았다가 날아가기를 반복했다.
오후에는 채마밭의 일을 마무리하고 부모님이 가꾸고 있는 화원 쪽으로 나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나절 구석에서 보았던 미처 손보지 못한 과실수는 당분간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었다. 어쨌든 수확의 때를 놓쳐, 바닥에 떨어진 열매는 또 다른 나무가 될 것이며, 소년이 정원을 떠나지 않는 한 꽃과 나무는 자라고 나비와 새들은 계속해서 찾아들 것이다.
Noteˏ
바람 / 채마밭 / 초록의 꽃 / 싱그러움 / 미숙함
믿고 맡는 베르가못과 머스크의 조합. 레몬의 허브향을 시작으로 싱그러운 풀내음과 약간의 꽃(아마도 머스크 때문인 듯 한)향기가 매력적입니다.
우연히 글을 쓰던 당시『비밀의 화원』(프랜시스 호지슨 버넷 지음)을 읽게 되었는데, 책장에 향수를 뿌린 뒤 책장을 넘기며 읽으니 좋았습니다. 햇살이 좋은 날 야외의 공기를 마시며 책을 읽을 때 어울리는 향이에요.
*이 글은 paffem의 'drop05. 풀잎 위 아침이슬'향수를 테마로 작성된 단편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