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이 도시의 주인공은 아닐지라도』 박찬용
목차 *책의 목차가 멋지다.
⤥ 해야 할 일을 합니다
⤥ 산란한 마음이 유행병처럼 들어도
⤥ 도시 생활은 점입가경이지만
⤥ 어쩔 수 없이 여기 사람이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시고,
하루의 마지막 와인을 마십니다.
우리의 일을 조용히 열심히 할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시고, 하루의 마지막 와인을 마십니다. 또 다른 삶은 없어요. 이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 레스토랑 슈타이어렉 오너, 오스트리아 빈
책 속의 누군가가 이야기했다. 하루의 첫 커피를 마시고, 하루의 마지막 와인을 마시는 그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2010년도에 일천만을 찍었던 서울의 인구는 2020년 현재 구백칠십만 대까지 그 숫자가 떨어졌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1/4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아무튼 나는 한 달 전부터 서울(이라고 하기엔 변두리)에서 아침이 오면 이부자리를 펼쳤다, 밤이 오면 또 개었다, 하고 있다. 커피나 와인만큼 낭만적인 삶은 아니지만, 삼십 년 만에 내 공간이라고 할만한 것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내 일이라고 할 수 있을만한 것들을 늘려가고 있다.
삶의 모양과 배경이 계속해서 바뀌고, 과거의 어떤 장면들이 다른 장면으로 덧칠해진다 해도, 기억 속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장면이 몇 있다. 그곳에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5층짜리 낮은 아파트와 그 건물을 빙 둘러서 있던 주차장, 그리고 창문 밖으로 내다 보이던 삼거리 위 아빠의 씨에로가 있다. 과학적으로 인간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뇌의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흐른다. 고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일까, 중학교 이후 10년의 간격으로 이사하던 집들에 비해, 그 시절 키 작은 아파트의 풍경이 더 선명한 것은.
지나온 삶의 공간에서 딱히 치열하게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으로 살아낼 자신은 없다. 열정이 없어도 열심히 살 수 있다. 막연하고 두려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더라도,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며 살아갈 수 있다.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꾸역꾸역 찾아 해내다 보면, 생각보다 잦은 빈도로 성취감과 만족감이 따라오기도 하니까. 다사다난했던 나의 20대는 그랬다. 안 해 본 일은 있어도 못 할 일은 없었다.
한국형 인싸는 불친절해야 제맛이다.
그는 진짜 인싸였다.
박찬용 작가는 서울의 어떤 조각을 잘라, 책장에 그대로 옮겨 놓았다. 나중에 아이들이 21세기 극 초반의 서울의 모습을 궁금해하면, 꼭 보여주고 싶은 책이다. '엄마가 이십 대에 보았던 서울은 이런 모습이었어'하며. 『박찬용 세속 에세이집』 에는 '개쩌는 빈티지 숍'을 비롯하여 인더스트리얼 힙과 젠트리피케이션까지, 소비문명의 흔적이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만일, 21세기 서울의 소비ㆍ문화 교과서를 펴내야 한다면, 꼭 참고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드물었던 휴일의 거리에, 다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주말의 번화가가 주는 에너지는 물론 굉장하다. 하지만, 평일 오전에 그곳에 자연스럽게 머무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쪽이 뭔가 마음이 더 편안하다. 그리고 그때 동네가 주는 매력이 더 크게 다가온다. 그 시간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내가 추구하는 삶의 에너지에 조금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책 속에서 나의 이십 대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이십 대 초반을 보냈던 여러 대학 인근의 번화가에서부터 이십 대 중후반을 보냈던 홍대, 연남, 합정, 상수까지. 사람들이 몰리는 주말이 아닌, 평일 낮에 그곳에 머물렀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보고 싶은 사람들.
뭔가 괜찮은걸 하겠다고 자신의 돈과 시간,
꿈과 인생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우리의 관심은 뭔가 괜찮은걸 하겠다고 자신의 돈과 시간, 꿈과 인생을 거는 사람들의 이야기어야 한다.'라고 반찬용 작가는 이야기했다. 서른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일에 대한 고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한 것을 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캄캄하고 앞으로도 시야가 희여멀건할 예정이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의 방향을 잡지 못할 일은 아니다. 헤매더라도 앞으로 나아갈 순 있다. 낭떠러지라도 만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 그리고 이 정도가 내 깜냥으로 해낼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여기에 오래된 중국집이 있다. 이름은 고려 반점이다. 서울에서 꽤나 오랜 세월을 보냈을 것 같은 건물의 행색과 인테리어 식기 등을 차치하더라도, 이 곳에서 만드는 볶음밥만으로도 충분히 '한국 볶음밥의 고증과 같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주인 할아버지는 주문부터 요리까지 혼자 도맡아 한다. 그 날의 볶음밥도 아주 보편적인 맛과 모양의 볶음밥이었던 모양이다.
수십 년 동안 한 자리에서 한 가지 일만 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그런 일이 나의 성미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조각들을 마주 할 때면,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불편함이 피어오른다. 나는 고려 반점의 주인 할아버지가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나도 고려 반점 할아버지의 팔목 스냅에 고여 있는 옛날 볶음밥의 설정값과 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