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알아서 해라! 지금부터 안 도와줄 테니까!

선택도 책임도 자신의 몫

by 신성철

세 아들이 긴 방학을 끝내고 개학을 했습니다. 고2 올라가는 첫째와 중 2 올라가는 둘째 그리고 초3 올라가는 막내의 얼굴에 긴장이 넘쳐납니다. 그동안 느긋했던 아침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늦잠 자는 아들들을 깨우려는 아내의 목소리와 더 자려는 아들들의 몸부림이 만나 집안은 신병 훈련소가 됩니다. 특히 고등학생인 큰 아이를 깨우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가 들어가서 깨우고, 다시 제가 들어가서 깨우고 다시 아내가 드어가고 제가 들어가기를 반복해야 겨우 일어납니다.


평일 큰 아들은 학원을 마치고 10시가 넘어 집으로 귀가를 합니다. 들어와서 씻고 간단히 간식을 먹으면 11시가 넘습니다. 그러면 아들은 1시간 스마트폰으로 친구들과 문자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 아들의 모습이 아내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엄마 : 이제 개학도 했는데 스마트폰 그만 만지고 일찍 좀 자라

아들 : 알겠어요. 이것만 보내고 잘게요

엄마 : 벌써 11시가 넘었다. 그만하고 자!

아들 : 알겠다니까요. 이것만 보내고 잘게요

엄마 : 네가 항상 그러니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잖아!

아들 : 제가 알아서 일어날게요

엄마 : 말은 항상 그렇게 하면서 아침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혼자 일어난 적이 있나?

아들 : 혼자 일어날 수 있어요

엄마 : 잘도 혼자 일어나겠다. 그렇게 늦게 자서 어떻게 일찍 일어난단 말인데

아들 : 일어날 수 있다니까요.

엄마 : 말은 죽어라고 안 듣지!

아들 : 말을 안 듣는 게 아니라 일어날 수 있다잖아요

엄마 : 나도 모르겠다. 알아서 해라! 내일부터 안 깨울 테니까 그렇게 알아! 그리고 아침에 학교 태워달라고도 하지 마! 내일부터 안 깨우고 안태워 줄테니까! 알겠어?!

아들 : 알았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 : 얼마나 잘하는지 어디 두고 보자!



그렇게 경고를 한 아내는 잠자리에 듭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여전히 아내와 저는 아들들을 깨우고 있고, 늦은 큰 아들은 아내에게 학교까지 태워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면 아내는 잔소리 한마디 하고는 큰 아들을 학교까지 태워다 줍니다.


어제저녁 늦게 자는 아들을 향해 안 깨워주고 안 태워준다는 아내의 경고는 오늘도 허공으로 흩어지고 깨워서 학교까지 태워다 줍니다. 그럴 때 저는 막내와 둘째의 등교를 돕습니다. 사실 아내와 저도 아침 출근이 바쁘고 분주합니다. 그래서 저는 되도록이면 아이들의 등교는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입니다.


아들을 데려다주고 온 아내는 감정이 많이 상해 있습니다. ‘그렇게 일찍 자라고 했는데 왜 말을 안 듣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일부터 다시는 안 깨우고 안 태워줄 거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압니다. 내일 아침도 오늘 아침과 똑같이 반복될 거라는 것을 말입니다. 저 또한 그런 아내의 행동에 동참을 하게 될 것입니다. 지쳐가는 것은 아내입니다. 아내에게 저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잠을 자고 안 자고는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부모가 자라고 해도 아이들이 잠을 자는 것은 아닙니다. 본인이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입니다. 불을 끄고 누웠다고 해도 본인이 안 자겠다고 생각을 하면 안 자는 것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리면서 있는 것보다는 불을 끄고 이불속에 누워 있는 것이 잠을 자는 데는 더 효과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잠을 자는 것은 결국 본인의 선택입니다.


그래서 잠을 자고 안 자고는 자녀의 선택에 맡겨두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에게 분명하게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학교에 지각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해야 함’을 말해야 하고, 부모가 그렇게 말을 했으면 아침에 일어나고 학교 가는 것을 지켜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안 깨워준다고 해 놓고 깨워준다면 자녀는 계속해서 행동이 반복될 것입니다.


그러니 자는 것이 자녀의 선택이라면 일어나는 것도, 정해진 시간에 학교를 가야 하는 것도 자녀의 선택으로 두어야 하고,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자녀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자녀는 결과를 통해 스스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지켜볼 자신이 없으면 지키지 못할 말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늦잠을 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아침에 깨워주고 태워주면 된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수 밖에는 없습니다. 만약 이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자는 것을 자녀에게 맡기고 일어나는 것과 학교 가는 것까지도 맡겨두고 부모는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제 생각에 아내는 쉽게 동의하지 못합니다. 어쩌면 당연합니다. 어떤 분은 이 글을 읽으며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라고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버지와 엄마의 차이를 떠나서 부모가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입니다.


아내와 저는 지금부터 아이들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을 키워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스스로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있도록 지켜보는 연습을 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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