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
저는 3대독자이신 아버지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대부분의 장남들이 그렇 듯 저 또한 장남으로서의 기대감으로 인한 부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할머니의 기대에 대한 부담이 컸습니다. 할머니께서는 17살에 시집오셔서 21살에 혼자가 되셨고, 긴 세월 아버지 만을 보고 사셨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에 대한 기대가 자연스럽게 저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와 아버지께서 저에게 자주 물으시던 말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의 물음에 저는 한 번도 망설임이 없이 ‘선생님이요’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할머니와 아버지께서는 ‘남자가 선생이 뭐야! 최소한 국무총리는 되어야지’라고 하셨습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제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의 큰 사람이 되기를 바라셨습니다. 선생님은 두 분이 보시기에 사소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아버지는 저의 행동의 결과에 따라서 저를 대하시는 태도가 많이 달랐습니다. 제가 기대에 충족이 되면 많은 칭찬과 사랑을 주셨지만 조금만 잘 못하면 호된 질책과 벌이 따라왔습니다. 할머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저는 할머니와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뭐든 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공부, 심부름을 하는 이유도 아버지와 할머니의 기대를 채워 칭찬받고 관심을 받고 싶기 때문에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엇을 원하고, 칭찬할 것인가에 따라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두 분의 칭찬을 기대했습니다.
특히 성적표가 나오면 제일 먼저 아버지께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성적표를 아버지께 드렸습니다. 성적표를 받아든 아버지의 반응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좀 더 노력을 해서 성적을 올려서 성적표를 들고 아버지께로 갔습니다. 당연히 칭찬을 받으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저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도무지 아버지께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는데 한 번도 제 기대대로 칭찬과 인정을 받은 적이 없다 보니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깟 칭찬 한 마디다 뭐가 어렵다고 저렇게까지 해야될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들인데 인정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칭찬 한마디 받겠다고, 인정받아 보겠다고 애쓰는 아들을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무심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달랑 말 한마디가 그렇게 어려울까 하는 원망이 쌓여져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런 원망들 속에서도 아버지에 대한 행동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칭찬받고 인정받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었고, 실망과 원망은 계속해서 쌓여져 갔습니다.
포기해도 되는 것인데 쉽지가 않았습니다. 실망과 원망이 쌓여져 갈수록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한 행동들은 점점 집착이 되어가 버렸습니다.
이런 집착은 제가 결혼을 하고 상담을 전공하면서 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았을 때 비로소 벗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하고 나를 다그치면서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에 눈물도 났습니다. 칭찬과 인정을 받기 위해 해왔던 저의 행동들에 긴 한숨도 났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노력했던 행동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노력하고, 다그쳤던 내가 아버지에게 진짜 듣고 싶었던 말이 ‘잘했다’, ‘대단하네’ 라는 칭찬이었을까요? 아니면 ‘역시 내 아들이네’라는 인정이었을까요? 제가 진짜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사실은 제가 아버지에게 진짜 듣고 싶었건 이야기는 ‘수고했다’, ‘ 대단하다’, ‘역시 내 아들이야’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진짜 아버지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아버지에게 진짜 듣고 싶었던 말, 필요했던 말은 칭찬도 인정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런 말들이 아닌 이런 말이었습니다.
‘고생했구나. 성적이 많이 올랐네. 그런데 너무 애 쓰지마.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너는 내 아들이야. 네가 공부를 잘하지 않아도 아빠는 너 사랑해. 네가 그렇게 노력하지 않아도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란다’
그렇습니다. 제가 진짜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저런 이야기였습니다. 아버지의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서 노력하고 힘들어하던 제게 필요했던 말은 칭찬도 인정도 아닌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아버지의 말이었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당신의 기대에 다 채워지지 않더라도, 조금 부족하더라도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란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우리 자녀에게 필요한 말일 수 있습니다. ‘잘했다’, ‘노력하는 모습 보니 대단하네’, ‘역시 너는 대단해’라는 말이 아닌 ‘너는 있는 모습 그대로 내 사랑하는 아들(딸)이야’라는 말 말입니다.
인정받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라는 말이 우리 자녀에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요? 가만히 안아주면서 말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부모님을 기쁘게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도, 부모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부모 또한 자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자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라는 존재, 부모라는 존재만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인정받을 만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그러니 인정받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나로써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존재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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