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대학의 학사 과정은 한국의 대학과는 사뭇 다르다. 1년 동안 열 개의 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를 열 달 동안 나누어 듣는 방식이다. 두 달에 두 과목, 그러니까 매달 새로운 강의와 새로운 시험을 맞이하는 셈이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중간고사를 치르고, 두 달째에는 바로 기말고사가 기다린다. 수업의 진도는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가고, 과제와 읽기 자료들은 학생들을 압도한다.
둘째는 어제부터 비명을 지르고 있다. 비명이라기보다는, 고통과 탄식에 가깝다. 아이는 노트북을 닫자마자 책상 위에 엎드려버렸다. “너무 많아, 너무 어려워. 수학이 나랑 이렇게 안 맞을 줄은 몰랐어.” 문제를 풀어보려 해도 무슨 말인지 알 수 없고, 설명을 들어도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처음 겪는 패턴은 아니었다. 학기가 막 시작하면 늘 찾아오는 혼란, 낯선 개념과 과제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는 순간.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더 크게, 조금 더 절박하게 다가온 듯했다.
나는 문득 작년을 떠올렸다. 첫 학년을 시작할 때도 아이는 비슷한 얼굴을 했었다. 타지에서 홀로 지내야 했고, 기숙사 생활도 처음이었다. 밥을 챙겨 먹는 것부터가 큰일이었다.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오는 일도, 낯선 주방에서 요리를 해보는 일도, 손에 익지 않은 청소와 빨래도 모두 새로운 과제였다. 공부 외에 생활을 지탱하는 일들이 아이를 더 힘들게 했었다. 게다가 성적을 관리해야 했고, 시험은 냉정했다. 어느 것 하나 대충 넘길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잘 버텼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았고, 힘든 순간을 지나며 작은 노하우를 쌓아갔다. 학기가 끝날 무렵에는 처음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니, 꽤 많이 성장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작년의 둘째와 지금의 둘째는 분명 달랐다. 목소리에도, 표정에도, 행동에도 어른스러움이 스며들었다. 하지만 다시 시작된 2학년의 수업과 학업량 앞에서는, 여전히 장사가 없었다. 새로운 강의는 마치 처음 자전거를 배우던 날처럼 낯설고 위태로웠다.
집사람은 아이에게 말했다. “이런 혹독한 트레이닝이 결국은 네 경쟁력이 될 거야.” 말은 다독임처럼 부드럽게 흘렀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정도였다. 옆에 앉아 대신 공부를 해줄 수도 없고, 시험을 대신 치러줄 수도 없다. 결국 아이가 직접 버텨내야 하는 길이다.
둘째가 내뱉는 비명은 어쩌면 성장의 신호인지도 모른다.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 벽에 부딪힐 때, 사람은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그 순간은 곧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계기가 된다. 노력 없이 얻는 결과는 없다. 고통이 큰 만큼, 성취의 기쁨도 클 것이다. 아이가 지금 느끼는 압박과 당혹감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히 실력과 자신감으로 변할 것이다.
창밖으로는 가을이 오고 있다. 하늘과 바람, 그리고 비. 공부하기엔 더없이 좋은 계절일지도 모른다. 둘째의 비명이 조금씩 잦아들기를, 대신 웃음과 성취의 목소리가 들려오기를 조용히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