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타락의 시작
서울 동부.
잿더미만 남은 폐허 위,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도 전인데
이미 수십 명의 소방대원과 경찰, 뉴스 카메라들이 현장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우현은 어젯밤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얼굴로 경찰선을 바라봤다.
“여기… 사람이 죽었어?”
“네. 세 명. 모두 화마에 휩싸여 형체도 남지 않았대요. 그리고 그들 옆엔, 한 명의 아이가 있었어요.”
윤서린이 말했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그 아이가… 자기 혼자 불길 속에서 무사히 걸어나왔대요. 단 한 점의 화상도 없이.”
“...”
정우현은 말없이 서린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산왕대신의 기운이에요. 불의 정령. ‘불을 다스리는 자’는, ‘불의 시련’으로 깨어나요.”
“그 아이… 지금 어딨어?”
[현장, 임시 대피소]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소년 하나가 이불을 덮은 채 무릎을 안고 앉아 있었다. 눈은 멍했고, 말이 없었다.
윤서린은 조용히 소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름이 뭐니?”
“…기성이요. 김기성.”
“괜찮아, 기성아. 무서웠지?”
소년은 눈을 들더니, 조용히 속삭였다.
“엄마가… 이상해졌어요.”
“이상해졌다니?”
“무당한테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목소리를 냈어요. 그리고 눈이 하얘지고, 저보고… ‘불 속에서 태어나야 한다’고…”
정우현이 눈을 찌푸렸다.
“악신이야.”
서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 무당은 ‘산왕대신의 씨앗’을 눈치챘어.
기성을 제물로 삼아, 불의 신을 타락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려 했던 거야.”
“…그게 가능해?”
“신도 깨어나기 전에는 순수해요.
그릇이 누구냐에 따라… 선한 신도 악한 도구가 될 수 있어요.”
정우현은 소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두려움과 상처 속에 숨어 있는, 불길한 붉은 기운이 소년의 눈동자에 스며 있었다.
“시간이 없어.”
그때였다.
대피소 창문이 깨졌다.
쨍—
순식간에 빨간 한복을 입은 여자가 들어섰다.
입에서 비명이 터질 틈도 없이, 그녀의 손끝에서 검은 불꽃이 뿜어졌다.
화르르—!
기성의 몸 주위로 불꽃이 일렁였다.
윤서린이 부적을 꺼냈고, 정우현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안 돼!”
그의 손끝에서 다시 한 번 푸른 물줄기가 솟아올랐다.
검은 불꽃과 푸른 물이 충돌하며 공간이 뒤틀렸다.
콰아아앙—!
윤서린이 소리쳤다.
“지금이야, 공수를 열어줘요!”
“난 그런 거—!”
“이미 열렸어요, 당신 안에!
당신은 이제 신의 입이자 눈이에요! 외쳐요!”
정우현은 숨을 들이쉬었다.
자신도 모르게 입이 움직였다.
“정화하라. 불의 이름으로 세상을 뒤틀려는 자여.
불은 태우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피어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기성의 몸에서 진짜 불이 피어났다.
붉지 않고, 황금색.
모든 걸 태우지 않고 감싸는 따뜻한 불꽃.
그 순간,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악!! 내 불이… 무너져!!”
악신의 기운은 파편처럼 흩어졌고, 소년의 이마에 붉은 기운이 사라졌다.
산왕대신.
그가 드디어 깨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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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이름 없는 무당들
가짜 무당 집단이 조직적으로 열두 신의 씨앗들을 사냥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우현과 서린은 다음 신을 찾기 위해 전통 시장 골목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동자대신’의 기운을 감지한다. 하지만 그곳엔 사람의 얼굴을 쓴 ‘무당 살귀’가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