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대신

6화: 신의 재판

by 수원 박선생

6화: 신의 재판

“가야 해요. 지금 아니면… 선황대신은 완전히 잠들어요.”

윤서린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정우현은 다시 손끝을 모았다.

물의 기운이 서서히 모여드는 감각.

하지만 이번엔… 단순한 ‘물’이 아니었다.

기억의 물.

신령의 의식과 연결되는 수맥(수로)이었다.

“나… 잘할 수 있을까.”

“당신은 이미 ‘말문’이 열렸어요.

이제는… ‘눈’을 떠야 해요.”

그녀가 손에 쥐어준 건, 명두 청동거울이었다.

“신의 영혼은 거울 속에 비칩니다.

현실과 환영의 경계가 사라질 때, 당신은 진실을 보게 될 거예요.”

[환영 – 선황대신의 의식]

정우현은 물의 흐름을 따라,

그 남자 선황대신의 그릇의 내면으로 들어섰다.

검은 하늘.

무수한 재단과 투표장이 있는 이상한 법정.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법정 중앙.

그곳에… 한 남자가 눈을 감은 채, 사슬에 묶여 있었다.

“이게… 선황대신?”

그의 옷은 황금색 망토처럼 빛났지만,

손목엔 굵은 진홍색 쇠사슬이 감겨 있었다.

그의 등 뒤로, 깃털 같은 황금빛이 천천히 꺼져가고 있었다.

“왜 말하지 않지?”

“왜 그들의 죄를 보면서도 침묵하지?”

주변에서 웅성거리는 가면들.

그들의 말이 칼이 되어 그를 찔렀다.

“그는 이제 중재자가 아니라, 침묵하는 배심원이야.”

“신이 입을 다물면, 악이 승리한다.”

그리고 그때, 그 남자가 눈을 떴다.

정우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의 입술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심판을 유보당한 신이다.”

[과거 – 봉인의 순간]

과거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국회의사당 지하.

비밀 의식실.

정장을 입은 남자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무속인 하나.

붉은 천에 몸을 감싸고,

손에는 낡은 북과 칼.

그녀의 얼굴은 가려져 있었지만, 목소리는 분명했다.

“중재란 말은 좋다.

그러나 이 세상엔 더는 선도 악도 없어.

그 경계를 내가 정할 거야.”

그녀는 선황대신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판단’을 폐기했다.

“심판은 인간의 것이야. 신이란 이름으로 덮어쓰는 건, 이젠 끝나야 해.”

그 순간, 선황대신의 몸이 ‘명두’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현실 복귀]

정우현은 갑자기 숨이 막히며 정신을 차렸다.

땀이 얼굴을 적셨고, 눈동자는 떨리고 있었다.

“봤어요?”

“…응. 그를 묶은 자… 무당이었어.

근데… 느낌이 달랐어.

보통의 무당이 아니라, 이미… 신을 타락시킨 자 같았어.”

윤서린은 표정을 굳혔다.

“아마… 그 사람일 거예요.”

“누구?”

“…검은 교단의 창시자.

이름 없는 무당.

신을 배신하고 악신을 받아들인 최초의 사람.”

정우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선황대신은 지금 어딨어?”

“그의 육신은 이 안건들과 정치의 언어 속에 묶여 있고,

영혼은 거울 속 ‘공간’에 갇혀 있어요.

그걸 열려면… 신을 상징하는 ‘3개의 열쇠’가 필요해요.”

“그 열쇠는…?”

“곧 깨어날 다른 신령들.

별성대신, 넋대신, 군웅대신.

그들만이 선황대신을 다시 세상으로 이끌 수 있어요.”

[마지막 장면 – 어둠의 회합]

한 폐건물.

가면을 쓴 무당들 수십 명이 둘러앉아 있다.

그들 중앙, 가장 먼저 선 자가 입을 열었다.

“정우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불사, 산왕, 동자… 이미 셋이 각성했다.”

“다음은 넋대신이다. 바리공주가 깨어나는 순간,

죽은 자의 넋들이 우리를 가로막을 것이다.”

그녀는 얼굴을 가린 붉은 베일을 살짝 들췄다.

검은 교단의 실질적 교주.

타락한 신의 무당.

이름 없는 자.

� 다음 화 예고

7화: 바리공주, 넋의 여명

선황대신을 구하기 위한 첫 열쇠. 죽은 자의 넋을 인도하는 바리공주의 씨앗이 깨어나려는 순간, 무수한 죽음의 기억이 현실로 몰려든다. 병원, 영안실, 조문장. 영혼의 고리 속에서 정우현은 진짜 죽음과 마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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