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대신

7화: 바리공주, 넋의 여명

by 수원 박선생

7화: 바리공주, 넋의 여명

서울 외곽, 산 중턱의 작은 병원.

늦은 밤인데도 조문장이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다.

이상한 점은 하나. 지금은 장례식이 열릴 시간이 아니었고,

병원 전체가 텅 비어 있었다.

“이곳에서… 뭔가 깨어나고 있어요.”

윤서린은 주술 나침반을 꺼내들었다.

바늘은 멈추지 않고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넋의 기운이 너무 강해요. 바리공주가… 깨어나기 직전이에요.”

[그녀의 흔적]

장례식장 한쪽 방, 작은 영정 사진이 놓여 있었다.

열다섯 소녀.

미소를 머금은 얼굴.

하지만 이름도, 장례식 날짜도 기재되지 않았다.

“이 아이… 기록이 없어요.”

정우현이 사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의 가슴이 이상하게 먹먹해졌다.

죽음의 기운은 분명한데, 그 안에 깃든 건 슬픔이 아니었다.

“애도조차 받지 못한 죽음…

이건, 버려진 넋이에요.”

윤서린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았다.

“그럼 이 아이가…?”

“바리공주의 씨앗.”

그 순간, 영정 앞에 놓인 촛불이 스스로 꺼졌다.

그리고 공간 전체가 흔들렸다.

[영혼의 문 열림]

조문장 뒤편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안개처럼 죽은 자들의 형상이 피어났다.

말을 잃은 노인, 흐느끼는 아이,

무표정한 청년, 그리고 얼굴이 없는 여인까지.

“이곳… 이건 그냥 병원이 아니야.”

정우현의 눈이 흔들렸다.

“맞아요.

이 병원은 옛날 전염병 격리소였어요.

기록에 남지 않은 수많은 죽음들이 묻힌 공간이에요.

그중 이 소녀가, 모든 넋을 끌어당기고 있어요.

바리공주가 깨어나려면, 이 죽음들에 이름을 불러줘야 해요.”

“이름을…?”

“넋을 부른다는 건,

그 죽음을 ‘죽음이었노라’ 인정하는 일이에요.

무속의 가장 근본적인 행위죠.

‘잊힌 자를 기억함’으로써 신을 부르는 것.”

[악신의 개입]

그때, 조문장의 벽이 갈라지며 검은 기운이 피어올랐다.

그림자 속에서 붉은 두루마기를 입은 여인이 걸어나왔다.

눈은 멀었고, 손에는 부채와 방울이 쥐어져 있었다.

“바리의 씨앗은 우리 것이다.”

그녀의 입술은 미세하게 벌어졌지만,

그 목소리는 수십 명의 영혼이 동시에 말하는 듯한 울림이었다.

“이름 없는 죽음을 먹는 자,

죽음을 잊은 자들을 거둬들여, 악신의 혼으로 삼겠다.”

“이건 해원(解寃)이 아니야! 이건 넋을 갈취하는 거라고!”

윤서린이 부적을 꺼냈고, 정우현은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의 눈동자에, 소녀의 모습이 또렷이 떠올랐다.

“나는 바리예요. 죽은 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자.

하지만 나도… 한때는 버려진 아이였어요.”

[공수 발동]

정우현의 입에서, 저절로 말이 터져 나왔다.

“잊힌 자의 이름을 부른다.

한을 품고 떠난 자여,

이제 너를 기억하노라.

너의 죽음은 의미 없지 않았노라.”

“너의 넋은 바리의 품에 안기고,

이제 새로운 이름으로 세상을 걷게 되리라.”

그 말과 함께, 조문장의 공간이 환하게 빛났다.

영정 속 소녀의 눈이 천천히 떠졌다.

그리고, 그녀의 뒤편으로

흰 한복에 오색 치마를 입은 여인 바리공주가 서 있었다.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갑니다.”

그 순간, 악신의 무당은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고,

죽은 넋들은 하늘로 올라가듯 사라져갔다.

[바리공주의 각성]

정우현 앞에 선 소녀는 이제 소녀가 아니었다.

그 눈동자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자의 슬픔과 평온이 함께 있었다.

“당신이… 저를 기억해줬어요. 그래서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윤서린은 조용히 무릎을 꿇었다.

“바리공주, 넋대신의 각성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정우현의 손을 가볍게 잡았다.

“당신은 저의 ‘길’이자 ‘입’이에요.

앞으로, 당신이 인도하는 곳에

모든 넋이 머물 수 있도록 도울게요.”

� 다음 화 예고

8화: 별의 길잡이

선황대신의 봉인을 풀기 위한 두 번째 열쇠, 별성대신의 씨앗을 찾아 별무리산으로 향하는 우현과 서린. 하지만 그곳엔 하늘의 별을 가리려는 또 다른 교단의 마술과, 별을 읽는 소년의 고독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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