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대신

11화: 균열

by 수원 박선생

11화: 균열

서울 전역에 이상 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정전된 거리, 갑자기 멈춘 전철, 의식 없이 걷는 사람들.

뉴스는 “대규모 전자기 장애”라 보도했지만, 정우현은 그것이 ‘악신의 첫 걸음’임을 직감했다.

“균형이 무너지고 있어요.”

윤서린의 말대로였다.

신이 돌아오면 악도 깨어난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졌으니까.

[신들의 진동]

“지금… 뭔가 들리지 않아?”

정우현은 귀를 기울였다.

처음엔 허밍처럼 들리던 그 소리는 점점 뚜렷해졌고…

“심판하라… 선택하라… 분리하라…”

“이건… 누구의 목소리지?”

“신들의 반향이에요.

신이 깨어나면, 세상의 근본이 흔들려요.

특히, ‘중재의 신’ 선황대신이 돌아왔다는 건 모든 기준이 다시 쓰이기 시작한다는 뜻.”

그때였다.

정우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익명 발신자]

“받지 마요.”

서린이 급히 말했지만, 우현은 이미 수신 버튼을 눌러버렸다.

[악신의 그릇: 첫 번째 등장]

“정우현.”

목소리는 낮고 맑았지만, 기이하게 메아리쳤다.

“나 기억하겠지? 고등학교 때, 네가 외면했던 아이.”

“…정…윤태?”

“그래. 난 죽었지.

네가 나를 외면했던 그날, 그 교실 옥상에서.”

“…그건…!”

“근데 웃기지?

신이 된 네 앞에, 악신의 그릇이 된 내가 다시 나타났다는 거.”

순간, 정우현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가… 깨어났어.”

윤서린이 고개를 들었다.

“첫 번째 악신의 그릇.

이름: 정윤태.

속성: ‘심연(深淵)의 악’.

타인의 죄책감을 먹고 자라는 존재.

스스로 죽음을 택한 자 중, 가장 강한 원을 품은 혼.”

[심연의 꿈]

그날 밤, 정우현은 꿈속에서 옛 교실로 돌아갔다.

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

교탁 위에 놓인 체육복,

그리고 교실 한쪽에 혼자 앉아 있던 아이.

정윤태.

그는 천천히 우현을 바라봤다.

“너는 항상 착한 척했지.

‘무시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아’, ‘말은 못 걸어도 신경은 썼다’고…”

“난—!”

“하지만 아무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았어. 선생도, 친구도, 심지어 너도.”

그는 미소 지었다.

“그러니 이젠, 내가 이름을 부를게.”

그 순간 정우현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심연의 공포.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고통.

신이 되어도, 인간으로서 외면한 기억.

[선황대신의 개입]

그 순간,

황금빛 바람이 교실을 가득 채웠다.

“그 기억은 너의 죄가 아니다.”

선황대신이 나타났다.

“하지만, 책임이다.”

정우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난, 그냥 무서웠어.

그 아이의 고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어.”

“그래.

그것이 인간이다.

그래서 신은, 인간을 대신할 수 없다.

신은 단지, 그 책임을 끝까지 감당할 ‘길’을 보여줄 뿐.”

[현실로 복귀]

정우현은 이마에 땀이 맺힌 채 일어났다.

심장은 아직도 떨리고 있었다.

“악신의 그릇이 하나 깨어났어요.

그리고 그건… 우현 씨의 과거와 연결된 인물이에요.”

“그럼 이제… 싸워야겠지.”

그는 조용히 손을 펼쳤다.

그 손 안엔, 아직도 미약한 물의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다음 화 예고

12화: 죄의 무게

정윤태는 첫 번째 심판을 시작한다.

자신을 외면한 사람들,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자들을 표적으로 삼는다.

정우현은 그를 막기 위해,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용서를 구할 수 있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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