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팽이의 꿈

by 세라비

얼마 전 점심을 먹고 직장으로 돌아오는 길, 시간은 촉박한데 신호는 줄줄이 걸리고, 차들은 외려 느긋해 보였다. 하긴, 여기는 클랙션도 별로 누르지 않고 여유롭게 운전하는 편이다. 답답하다는 마음과 함께 문득 달팽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냥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의 반향으로 그런 생각이 든 것 같다. 그 뒤로 이따금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주로 무언가를 정리할 때다. 옷장에 산발적으로 쌓인 옷가지들이나 여기저기 쌓인 책들, 신발장 안에서 엉켜있는 신발들을 볼 때라든지, 뭔가 내 삶에서 간편하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들 때다. 훌훌 벗어버리고 그저 조금씩 이곳에서 벗어나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그런 느낌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달팽이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적어도 집이 없다는 걱정은 하지 않겠지. 비가 오면 껍질 안으로 들어가면 되고, 해가 뜨면 다시 껍질 밖으로 나와 햇볕을 쬐면 되고.


느리지만 꾸준히 어디든 갈 수 있는 데다 껍질이 가벼워서 이동할 때 무거운 짐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어느 순간 말도 안 되는 달팽이의 장점들이 하나하나 열거되기 시작했다.


이런 상상력을 동원해서 사실은 달팽이 껍데기 속에 이미 모든 것을 갖춰 놓은 것은 아닌가, 아무도 달팽이의 껍질 속에 들어가 본 적은 없으니, 혹시 누가 알아, 달팽이들 나름의 껍집(껍질과 집의 합성어로 내가 지어냈다.) 속에는 이미 그들이 원하는 것들이 다양한 삶의 스타일로 존재하는 것 아닌가, 하는 동화적인 생각을 하다못해, 미래에 인간이 달팽이 같은 껍질을 주거 공간으로 가볍게 지니고 다닐 수 있게 될지도?라는 사심이 가득한 생각을 거듭하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상상 같지만, 수십여 년 전에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는 데다 수백 년 전으로 더 내려가면 하늘을 날아 다른 나라에 도달한다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었을 거다.

우리가 생각하는 불가능 속에서 가능한 것들은 꾸준히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것 외에도 달팽이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이유는 꾸준히 길을 나아가는 모습에 대한 작은 열망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나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것을 수도 있겠지만.


꾸준히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사람들을 볼 때면 언제나 자극이 되고 동기유발이 된다. 한편으로 조금 부럽기도 하다. 뭔가 나에게 없는 내면의 단단함을 지닌 것 같아서. 그런데, 놀랍게도 다른 이들로부터 그런 말들을 가끔씩 듣곤 한다.


최초로 그런 말을 들었을 때는 저 사람이 아직 날 모르는구나, 혹은 내가 남들에게 이렇게 보이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신기한 마음이 들었는데, 그런 일들이 여러 번 되다 보니 어쩌면 나 보기보다 굉장히 성실할 수도, 라는 자뻑 모드에 빠졌다가 다시 일상에서 마주하는 나의 게으름들을 아, 역시 아니구나. 하는 것을 깨닫기를 수차례 반복하는 중이다.


이런 말을 스스로 쓰기는 참 뭣하다만, 하나님을 만나고 참 신앙의 길로 들어선 뒤에는 내 인생의 이정표를 알게 되었고 나의 길을 간다는 것, 한 발씩 한 발씩 비전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 줄 알게 되었다.


때로는 멈출 때도 있고 때로는 더딜 때도 있고 때로는 물러설 때도 있다. 하지만 내가 선 자리에서 뒤돌아보면 이제까지 걸어온 나의 행적들이 보이고, 속도는 달라도 결국은 방향성을 갖고 나아가고 있음이 보인다.


달팽이에서 시작해서 삶의 방향성까지의 횡설수설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내가 정말 바라는 것은 어쩌면 나를 둘러싼 곁가지들을 걷어내고 그 속에 자리한 진짜 내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고 싶은 열망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오늘은 퇴근을 하고 집에 가자마자 냉장고를 정리해야지. 그리고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서 요리를 해야겠다.


작은 재료지만 신선한 재료로 깔끔하고 단정한 맛이 있는 요리를 하고 싶다. 복잡한 레시피가 필요 없는 재료의 장점을 살린 간단하지만 정갈한 요리.

나의 하루도 거창한 레시피 없이 간결하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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