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고 하기엔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온전히 불태워보지 못한 그것은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질리지도 않지만, 답도 딱히 없다. 연애를 성공한 사람이야기면 좋겠지만, 나도 할 말은 많다.
내 안에 만족이 없어 그 부족함을 채워줄 누군가를 찾아 소개팅, 데이트, 연애를 퐁당퐁당 해 오면서 게임으로 치자면 어느 단계까지는 올라가지만, 결코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고 Game Over~ 되는 느낌
고등학교 때는 전학생 중에 처음 결혼하면 냉장고를 준다고 했던가 반지를 준다고 한다라는 카더라 통신에 내 친구들과 서로 자기가 먼저 결혼하겠다고 다짐을 하던 그 객기는 없어지고, 좋은 신랑감들이 많았던 나름 경쟁력도 있었던 때 은행원들 연구원들은 넘 시시해~ 하며 경제과 교회오빠와 연애를 하며 양말 사줘 옷 사줘 뻘짓을 하며 온 동네 다 알도록 연애를 하더니 훌쩍 결혼적령기가 넘어가고 있었다. 내 친구들은 31살까지 거의 결혼을 했었고 유일하게 가족이 인정한 벤처업과 베트남쌀국수업 투잡을 하던 남자 친구를 마지막으로 연애 끝 외가에서 소개해준 목사와의 결혼을 단행 평소 존경할만한 사람과의 결혼을 꿈꾸던 나는 적어도 바람은 피우지 않겠지~ 싶었다. 외국에서 목회활동할 계획이 있어 그것도 결정의 요인이 되었다. 그 이후 좋지 못한 결론으로 서류상에는 싱글이지만, 결혼은 한 고런 포지션으로 2~3년을 칩거하면서 쉽게 결혼 결정을 한 나를 용서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내 눈을 파버리고 싶었다. 아마 우울증이었을 거 같다. 그 이후 엄마는 그런 나에게 어떤 야유나 울분 없이 그냥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셨다. 너무 감사하다. 오빠부부도 나를 살뜰히 챙겨주었다.
그리고 또 머나먼 연애의 여정을 떠나 다시 재궤도로 돌아가고 싶고, 엄마에게 한석규 같은 스타일의 사윗감을 이번에는 꼭 보게 해 드리리라 다짐하며 재력 있는 팔 짧은 외국에 사는 사업가, 부동산 사업가, CCTV로 임대업 하는 장소들을 관리하는 은평타운의 두 아들을 둔 모지리 등산러버 남자까지 이름도 몰라 성도 기억 안 나는 이들을 만났지만, 소개팅하고 데이트까지는 가지만, 그 이상은 상대도 그렇지만, 나도 마음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더 진전되려고 하면 심지어 다른 여자랑 팥빙수 하나에 숟가락 두 개 얹어 먹은 사진을 나에게 잘못 보내 파투 나기도 한다.
이제 나는 "혼자 살 결심"을 하고 있다. 거의 다~ 아직 포기 못한 마지막 인연에 대한 미련은 스님이 심어주셨다. 동네 시장 내에 작은 사찰에 주지스님이 메기를 방생하는 조금은 특이한 사찰인데 "음~ 혼자 사는 게 좋은데, 마지막 이 세상 떠날 때는 연하남이 곁에 있어주겠네!"라고 하셔서 그 말씀을 꼭 붙들고 있다, 아니 붙들고 싶다. 친한 언니가 말하는 "나쁜 놈 지남철 되고 싶지 않으면 그냥 싱글로 살자. 나이 더 먹으면 실버타운 같이 가면 되지~" 신점을 좋아하던 나는 점사의 공통점이 "그냥 혼자 살아요", "남쪽에 있는 곳에 집 짓고 진돗개 한 마리 기르면서 편하게 살아요" 요런 식이다. 남자는 밖에서 만나고 집안으로는 안된다고~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려는 그런 마음보다는 될 일이면 되고 그냥 지금 이대로를 받아들이면서도 아직까지마음은 열려있다. 다만, 쉽게 아무에게나 열리지 않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