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 위에서 울려 퍼진 소리, 생명이 화답하다
판소리에 반응한 개구리들, 연못 위 작은 기적
연못 위에서 울려 퍼진 소리, 생명이 화답하다
깊고도 울림 있는 소리가 연못 위로 퍼졌다. 순간, 조용하던 물가가 생명으로 일렁이기 시작했다. 개구리들이 기다렸다는 듯 몸을 튕기고 목청을 열었다. 그 춤과 노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절묘하게 어울려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을 상상만으로도 숨이 멎을 듯했다.
요즘 나는 민요를 배우고 있다. 가르침을 맡고 계신 J 선생님은 얼마 전, 하동군 악양면 하중대길에 위치한 판소리기념관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셨다. 선생님은 그곳에서 아주 신기한 일을 겪으셨다며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셨다.
작은 연못가에서 판소리를 부르자, 조용하던 개구리들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짝짓기라도 하듯 물가를 오가며 목청을 돋우고, 활발히 움직였다고 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일—선생님의 소리가 멈추자 개구리들의 합창도 조용히 막을 내렸다는 것. 마치 지휘자의 손짓이 멎자 연주를 끝낸 오케스트라처럼 말이다.
이 신비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챗GPT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 답변을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개구리, 소리에 민감한 작은 가수들
개구리는 작은 몸집에 비해 놀랍도록 민감한 청각을 지녔다. 특히 수컷들은 번식기 동안 암컷을 유인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운다. 이때 다른 개구리의 울음은 물론, 빗소리, 바람 소리, 심지어 인간의 소리에도 반응할 수 있다고 한다.
판소리는 그 자체로 강렬하고, 감정이 실려 있으며 리듬이 살아 있는 음악이다. 개구리들에게는 그 소리가 동료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는지도 모른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강하게 울려 퍼지는 진동이, 개구리들의 청각을 건드린 것이다.
판소리가 짝짓기를 유도했을까?
개구리들의 사랑은 소리에서 시작된다. 수컷이 먼저 울고, 암컷이 그 소리에 반응해 다가간다. 개구리들의 울음은 대체로 2~4kHz의 주파수를 갖는데, 판소리 역시 높은 성량과 겹치는 음역대를 지닌다. 어쩌면 개구리들은 판소리를 경쟁자의 구애 신호로 착각했는지도 모른다.
또 개구리들은 무리를 지어 울곤 한다. 혼자보다는 함께 울 때 더 강하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누군가 먼저 시작하면, 너도나도 화답하며 하나의 합창을 이룬다. 판소리의 웅장한 장단과 깊은 울림은 개구리들의 본능적인 리듬과 겹쳐지며, 마치 자연과 인간의 합주가 된 듯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고요 속의 신호, 소리가 멎자 다시 정적
그렇다면 왜 판소리가 멎자, 개구리들도 순식간에 조용해졌을까?
첫째, 개구리들은 에너지를 절약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더 이상 주변에서 자극이 없다면, 울 이유도 없어진다. 둘째, 이 정적이 포식자의 접근으로 오해됐을 가능성도 있다. 숲 속에서 갑작스러운 침묵은 위기의 신호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가 멎자, 개구리들은 본능적으로 그 정적을 경계했을지 모른다.
자연과 소리의 교감, 그 신비로운 순간
이 모든 반응은 그저 우연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생명은 언제나 귀 기울이고 있다. 판소리의 깊은 울림이 연못 속 작은 생명들에게는 짝짓기의 신호처럼 들렸고, 그 울림이 사라지자 다시 침묵의 물결로 돌아간 것이다.
그 순간은 단순한 현상이 아니라, 자연과 소리가 교감하는 경이로운 한 장면이었다. 우리 안의 감각이 무뎌졌을 뿐, 자연은 언제나 소리에 반응하고, 소리로 대화하고 있다.
언젠가 나도 그 연못가에서 판소리를 부르고, 개구리들의 합창을 들으며 그 신비로운 순간을 온몸으로 느껴보고 싶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에, 생명들이 화답하는 그 장면—상상만으로도 이미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