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함께 걷는 은퇴 이후의 하루
삶은 반복이지만, 우리는 함께 새롭게 살아간다
-철학과 함께 걷는 은퇴 이후의 하루
아침 5시 반.
어둠이 아직 채 걷히지 않은 시간, 나는 조용히 눈을 뜬다.
두유에 콘프레이크를 말아 간단히 아침을 채운 뒤, 책상 앞에 앉는다.
정년 이후에도, 내 안의 배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늘도 인공지능에 관한 새로운 개념 하나를 익힌다.
니체는 말했다.
“영원회귀를 견딜 수 있는 삶이 진정한 삶이다.”
되풀이되는 하루를 그저 버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면 —
그 삶은 반복이 아니라, 창조적 순환이다.
이제는 옆방의 아내도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AI를 배우고, 자신만의 콘텐츠를 유튜브로 나누는 그녀.
젊은 시절 교단에 서 있던 모습과는 또 다른 빛으로 반짝인다.
말없이 각자의 책상 앞에 앉은 고요한 아침,
우리는 어쩌면 지금,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셸이 말한 ‘존재적 충만’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말했다.
“존재는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지금 우리는,
함께 배우고 함께 나이들어가는 삶 안에서
서로를 더 깊이 존재하게 한다.
공부를 마친 후엔 반려견과 함께 진해 웅산을 오른다.
4년째 밥을 챙겨주고 있는 들고양이들이 산철쭉 숲에서 "야옹" 하고 인사를 건넨다.
그 작은 소리에 마음이 풀린다.
사르트르는 말했다.
“인간은 본질 없이 태어나며, 스스로를 정의한다.”
고양이와의 교감,
매일 걷는 이 산길 위의 사유들 —
그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있다.
정해진 노년은 없다.
나는 매일 새롭게 나를 만들어가는 존재다.
같은 산길, 같은 아침이지만
나는 어제와 같은 내가 아니다.
오늘은 AI 알고리즘을 하나 더 이해했고,
아내는 새로운 구독자에게 따뜻한 댓글을 남겼다.
한나 아렌트는 말했다.
“인간의 자유는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드러난다.”
우리의 일상은 소박하다.
하지만 그 속엔,
생각하고, 나누고, 살아가는 자유의 흔적이 있다.
삶은 반복되지만
우리는 어제보다 조금 더 깨어 있고 싶다.
더 배우고, 더 나누고, 더 사랑하며
이 늦은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를 북돋는
창조의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