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숲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숲의 재설계

by 이천우

푸른 숲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푸른 숲은 관리해야만 지켜진다



한국에서 소나무는 단지 하나의 수종이 아니었다. 소나무는 ‘한국인의 삶과 풍경, 정신을 은은히 지탱해 온 존재’로서, 한국 사람들의 공동체적 기억과 문화의 일부였다.


경부선 열차를 타고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 아직 많은 산들이 푸른 빛깔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밀양역(密陽驛) 상행선 들머리에 자리한 산자락에는 여러 그루의 소나무가 마른 채 서 있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아마도 재선충(松材線蟲)의 피해 때문일 것이다. 그 풍경을 마주한 순간, 마음 한켠이 저릿해진다. 실제로 산에 오르면, 말라버린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습을 자주 접하게 된다. 한때 절개(節義), 장수(長壽), 충의(忠義)를 상징하며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던 상록(常綠)의 기상은, 지금은 침묵 속에서 메말라 있다.


마을 어귀의 당산목(堂山木), 왕릉의 수호림(守護林), 사찰과 누정을 잇는 경관축(景觀軸), 그리고 한옥의 기둥과 보, 송편 위의 솔잎과 송연묵(松煙墨, 소나무 그을음으로 만든 먹), 문인화의 세한삼우(歲寒三友, 추운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하는 소나무·대나무·매화)에 이르기까지—소나무는 삶과 예술, 정신의 배경이었다. 또한 20세기 후반, 황폐한 산을 되살리는 조림 사업의 주역으로 활약하며 소나무는 '재목(材木)'이자 '상징(象徵)', 그리고 '정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러나 기후 위기와 재난(災難)의 조건이 격변하면서 소나무 숲의 구조도 다시 설계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강풍, 고온, 저습도 속에서 마른 가지와 낙엽 같은 하층연료(下層燃料), 수지(樹脂)의 축적은 불길의 확산을 부추기고, 침엽수 단순림(針葉樹 單純林)은 이러한 위험이 겹치기 쉬운 구조다. 2025년 봄 대형 산불은 이러한 취약성을 드러내며, 내화(耐火) 구조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단일 수종 중심에서 벗어나 혼효림(混交林)과 다층림(多層林)으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소나무를 일률적으로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목적(目的)과 입지(立地), 관리 역량(管理 力量)에 따라 '지킬 곳은 정교하게 지키고, 바꿀 곳은 차분히 바꾸는' 이원 전략(二元 戰略)을 취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소나무라는 이름 속에 이미 다양한 '소나무들'이 공존해 왔음을 인식하는 데 있다. 적송(赤松)은 선비정신의 상징이자 문인화와 송연묵의 재료로서 '향(香)'과 '빛깔(色)'을 더했고, 곰솔(海松)은 바닷바람과 염분을 견디며 방풍(防風)·방사림(防砂林)으로 어촌을 지켰다. 잣나무는 고운 맛과 균일한 목재로 식문화와 공예를 이끌었으며, 백송(白松)은 흰 수피의 청정(清淨)함으로 정원과 사찰을 맑게 만들었다. 왜송(倭松)과 리기다소나무 역시 각각 정원미학(庭園美學)과 조림정책(造林政策)의 일환으로 기능해 왔다. 소나무는 하나의 독창이 아니라, 장소와 시대에 따라 다양한 파트를 노래해 온 합창(合唱)이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소나무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새롭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우선 문화적(文化的)·경관적(景觀的) 가치가 큰 솔숲에는 정밀한 관리형 보전(管理型 保存)이 필요하다. 병해충 예찰(豫察)을 자주 실시하고, 하층연료를 줄이며, 가지치기(剪枝)와 간벌(間伐)을 통해 사다리 연료의 연속을 끊고, 방화선(防火線)과 완충연료대(緩衝燃料帶)를 설치해 불이 멈칫거릴 틈을 만들어야 한다. 동시에 사람과 장비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임도(林道)도 전략적으로 배치해야 한다.


한편, 산불 위험이 높은 침엽 단순림 구역은 리스크 기반 전환(危險度 基盤 轉換)이 요구된다. 이곳에서는 혼효림을 조성해 수관(樹冠)의 연속을 끊고, 다층림을 통해 수분을 유지하고 바람을 분산시켜 내화성을 높여야 한다. 바람길과 지형을 고려한 임도와 방화선, 입지에 맞춘 맞춤형 수종 배치도 병행되어야 하며, 초기에는 빠르게 활착하는 소나무를 활용하되 중장기적으로는 혼효와 다층 구조로 유도해야 한다.


또한 소나무재선충병(松材線蟲病)에 대해서도 우리는 두려움보다 합리적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감염목을 조기에 예찰(豫察)해 제거하고, 수간주사(樹幹注射)와 매개충 방제(防除)를 병행하며, 무엇보다 숲의 구조 자체를 다양화(多樣化)해 한 수종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 이는 단순한 방제가 아니라, '소나무만 고집하지 말고, 소나무도 포함된 다양한 숲을 만들자'는 균형감 있는 접근이다. 지킬 자리는 더욱 정밀하게 지키고, 바꿀 자리는 더디더라도 차분히 바꾸는 것—그것이 오늘날 숲을 다루는 상식(常識)이다.


이러한 실천은 곧 문화의 층위(層位)와도 연결된다. 겨울 산허리의 적송은 붉은 수피와 푸른 잎의 대비로 눈을 맑게 하고, 해송은 투박하지만 마음을 다잡게 하는 멋이 있어 마음을 단단히 세우며, 잣은 식탁에 섬세한 고소함을 올려 일상의 품격을 더하고, 백송은 정원의 한 장면에 정적(靜寂)을 찍는다. 우리는 이 품격의 미학(美學)을 관리의 미학으로 확장해야 하며, 가지를 다듬고 바닥을 가볍게 하며 이웃 나무들과 어깨동무하도록 설계하는 일 자체를, 사람과 숲이 오래 함께 살기 위한 디자인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는 위성(衛星)과 드론이 포착하는 큰 그림과 현장 기술자의 디테일이 만나고, 임연부(林緣部)와 바람길을 세심하게 관리하며, 수원함양(水源涵養)·경관·생물다양성(生物多樣性)·목재(木材)·열원(熱源) 등의 목적 구획(目的 區劃)을 명확히 하는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 소나무의 이야기는 정체성(正體性)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關係性)을 새롭게 설계하는 일이다. 곰솔은 바다와, 적송은 능침과 사찰과, 잣나무는 식문화와, 백송은 정원과 오랫동안 어울려 살아왔듯이, 이제 우리는 소나무를 참나무(橡樹), 자작나무(白樺), 서어나무, 물푸레와 함께 심어 다층(多層)의 합창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소나무는 과거의 상징(象徵)을 넘어, 미래의 안전(安全)과 미학(美學)을 함께 떠받치는 '관리의 나무'로 거듭날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산불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숲은 저절로 안전해지지 않으며, 건강한 구조는 기다림과 손길이 축적된 결과라는 것을. 그러므로 우리는 숲을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존재로 다시 바라보아야 하며, 혼효와 다층 구조는 목표가 아니라 여정이어야 한다.


2025년 3월,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대형 산불은 안동, 청송, 영양, 영덕 등지로 확산되며 일주일 넘게 이어졌다. 성묘객 실화로 추정되는 불씨는 강풍과 건조한 날씨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중대본 기준 약 4만5천 헥타르의 산림이 피해를 입었다. 더욱이 고운사와 만휴정 원림이 전소되고 병산서원, 하회마을도 위협을 받았다. 인명 피해 역시 커서 7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단순한 화재를 넘어, 숲의 구조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 것인가를 묻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대형 산불은 우리가 마주한 현실을 직시하게 한다. 숲은 감상의 대상이 아니라, 구조와 관리가 필요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단일 수종 중심의 숲을 어떻게 바꿔갈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소나무의 상징성(象徵性)은 지키되—숲의 안전(安全)과 회복력(回復力)은 혼효(混交)·다층(多層) 구조와 생활 속 관리(管理)로 키운다. 그 길은 느리지만, 반드시 걸어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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