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길목에서 나의 선택

우연이 필연의 결과로

by 이천우

우연의 길목에서 나의 선택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렸지만 내 인생이니 만족한다



필자는 고교 시절 모교 학예지 ‘群星’에서 한 선배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제목은 “우연이 필연의 결과를 가져왔다”는 취지였다. 오래전 글인데도 줄거리는 또렷하다. 그 선배는 국립 고교인 경북사대부고가 특차 전형으로 학생을 모집하던 시절, 지원해 합격하며 그 학교에 들어왔다. 이어 6·25 직후의 어려운 환경 속에서 등록금 부담이 비교적 적은 길을 찾아 육사에 진학했다. 그러나 군 생활에 잘 적응하기 어려워 이른 시기에 전역했다. 전역 후 잠시 쉬던 시절, 우연히 지역 유명 신문사 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했고, 그 결과 언론인의 길로 들어섰다. 세월이 흐른 뒤 그 선배는 그 신문사의 논설위원이 되었고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로 활동하고 있었다.

겉모습만 보면 안정과 성취의 서사가 분명하다. 그런데 그 선배는 글의 끝에서 조용히 자신의 속마음을 꺼냈다. 어린 시절 자신이 꿈꾼 것은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였다고. 지금의 자신은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리고 있는 셈’이라는 자조 섞인 고백이었다. 이 표현이 오래 남은 이유는 단순한 겸손 때문이 아니라, 현실을 과장 없이 바라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정확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한 번쯤 ‘더 큰 버전의 나’를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그 꿈과 현재의 거리도 분명히 느끼며 살아간다. 그 거리를 마주하는 순간, 사람은 두 감정 사이에 선다. 하나는 아쉬움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을 견뎌 온 자신에 대한 조용한 인정이다. 이 둘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오히려 함께 간직한다. 그래서 인생의 회고는 종종 달콤하면서도 쓰다.


돌아보면 그 선배의 삶은 고비마다 우연의 연속이었고, 동시에 선택의 연속이었다. 국립 고교를 택한 이유도, 육사를 선택한 이유도, 기자 시험을 치른 이유도 모두 그 시절의 현실 속에서 가능한 선택이었다. 다만 그 선택들이 연결되며 예기치 못한 필연을 만들어 낸 것이다. 우연이란 뜻밖의 기회가 문을 열었고, 선택이 그 문을 삶의 구조로 굳혀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던 것이다.


필자도 지난 70여 년의 삶을 회고하며 그 선배와 같은 상념에 젖는다. 나 역시 처음부터 지금의 길을 설계한 사람은 아니었다. 시대와 경제적 조건, 가족과 공동체의 요구 속에서 ‘그때 가능한 길’을 택해 온 시간이 더 길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선택은 충분히 능동적이었고, 어떤 선택은 생존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러한 선택들이 쌓여 지금의 내 삶을 만들었다. 결국 삶은 계획의 결과이기보다 적응의 결과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더 선명하게 깨닫는다.


사람들의 삶을 그리며 살아온 필자


그럼에도 마음 한쪽에는 늘 같은 질문이 남는다.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어떤 길을 걸어갔을까.” 이 질문은 후회라기보다 인간이 삶을 대하는 자연스러운 감각에 가깝다. 우리는 선택의 순간마다 다른 가능성을 포기한다. 경제학의 언어로 말하면 기회비용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기회비용은 숫자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포기한 길은 때로 미련이 되고, 때로는 스스로를 붙잡아 주는 기준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는지에 대한 기억이, 이제의 나를 지키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우연이란 말을 쓴 김에 운(運)을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우연한 선택이 필연의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사람들은 그걸 그 사람의 운이라고 부른다. 나는 운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운을 과장하면 삶이 가벼워지고, 운을 부정하면 삶이 삭막해진다. 그래서 나는 운을 ‘현실 속의 우연’으로 인정하되, 그 우연이 어떻게 ‘나의 필연’으로 굳어지는지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운은 방향을 틀어 기회를 열어주는 바람이고, 선택과 태도는 그 바람을 돛에 걸어 현실로 나아가게 하는 기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를 그렸다”는 선배의 고백도 단순한 실패담이 아니다. 그것은 욕망과 현실의 간극을 정확히 인정한 사람의 결론이 아닌가 싶다. 동시에 하찮다고 표현한 선배가 그린 고양이 역시 결코 하찮지 않다. 글을 쓰며 살아온 시간, 지역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로서 활동하면서 시대의 현장을 기록해 온 책임, 그 역할이 쌓아 올린 무게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꿈의 크기로만 삶을 평가하지만, 현실의 지속은 다른 차원의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나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인생은 거대한 서사보다 오래 버틴 현실의 결이 더 자주 진실을 보여 준다고. 큰 꿈을 품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꿈이 삶을 압도해 현재를 파괴하게 두면 곤란하고, 반대로 현실에만 매달려 꿈을 조롱하듯 살아가면 마음의 활력이 마른다고. 결국 필요한 것은 균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꿈은 방향을 잡아주고, 현실은 속도를 조절하기에, 그 둘 사이에서 우리는 ‘지속 가능한 선택’을 배우며 살아간다.


지금 내 삶을 돌아보며 나는 작은 실천을 두 가지로 정리해 본다. 첫째, 중요한 선택 앞에서 “내가 얻는 것”과 “내가 포기하는 것”을 각각 한 줄로 적어 보자. 포기하기까지 정직하게 적는 순간 선택의 밀도가 달라진다. 둘째, 선택 이후를 버틸 루틴을 함께 설계하자. 건강, 갖가지 관계, 시간의 최소 기준이 정리되지 않으면 좋은 결정도 쉽게 무너진다. 사회는 한 개인의 선택이 과도한 비용을 치르지 않도록 보완할 책임이 있다. 중장년과 시니어의 전환 학습 기회, 지역 단위의 건강·문화 인프라, 세대 간 연결을 돕는 제도 같은 것들이 그 기반이 된다.


우연이 길을 열어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진짜 내 길로 만드는 건 결국 나의 걸음이 아닌가. 호랑이를 그리지 못했더라도, 내가 그린 고양이가 나와 누군가의 하루를 지탱하는 데 작은 힘이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삶의 결실이라고 믿는다. 삶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거창한 호랑이 같은 큰 그림보다, 오래 버틴 선택의 진심을 더 깊이 신뢰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용한 믿음이야말로 우연을 필연으로 바꾸는 가장 현실적인 힘이 아닐까.


내가 살아낸 궤적을 사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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