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고양이의 작은 인사

들고양이와 교감하며

by 이천우

들고양이의 작은 인사


필자는 웅산에서 자주 들고양이를 만난다



초겨울 산공기는 얇은 유리처럼 투명하고 차다. 그 공기를 마주하면 몸보다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그래서 오늘은 반려견을 집에 남겨 두고 혼자 웅산으로 향했다. 노령에 접어든 아이를 위한 배려였지만, 평소와는 다른 고요함이 산길을 길고 쓸쓸하게 만들었다. 목재체험장을 지나 계곡으로 들어서면 싸한 바람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발밑의 돌계단은 하루를 조용히 붙잡아 주는 손처럼 단단하게 놓여 있었다.


나는 이 돌계단을 자주 오른다. 숨이 차긴 하지만 힘에 부치지는 않는다. 걸어 올라가는 동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차분해진다. 아침 운동은 무리하지 않고, 몸을 깨워 하루를 버틸 컨디션을 만드는 정도로 한다. 이 계단은 그 목적에 가장 잘 맞는 코스다. 계단을 다 오르고 잠시 숨을 고른 뒤, 나는 광석골 쉼터로 향한다. 그곳에는 내가 자주 마주치는 들고양이들이 있다.

벌써 오 년째, 나는 그들에게 밥을 주고 있다. ‘밥을 주는 사람’과 ‘밥을 먹는 고양이’라는 단순한 역할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계절의 순환과 시간의 결이 촘촘히 쌓여 있다. 무더웠던 날, 비가 내렸던 날, 햇살이 유독 고마웠던 날 등 여러 날이 있었다. 관계란 반드시 말을 주고받아야만 깊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나는 이곳에서 배웠다. 말없이 서로를 기억하고 조심스레 응시하는 방식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오늘도 정자 마루 아래 그릇에 사료를 놓고 광석골 둘레길을 걷고 있었다. 그때 철쭉숲 너머에서 ‘야옹’ 하는 작고 또렷한 소리가 들려왔다. 햇볕이 잠시 머문 자리에 몸을 동그랗게 말고 앉아 있던 흑갈색 얼룩무늬 고양이가 먼저 인사를 건넨 것이다.


겨울빛은 얇았지만 따뜻했다. 금빛 햇살이 빈 계절의 틈을 조용히 덮어 주듯 그 아이의 등을 감싸고 있었고, 고양이는 그 빛 속에서 나를 한 번에 알아본 듯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반가움을 숨기지 않는 목소리로 다시 야옹! 하고 말했다. 마치 “오늘도 오셨네” 하고 확인해 주는 작은 신호처럼.



나는 멈춰 섰다. “양이 안녕, 오늘도 잘 있었어?” 몇 번이고 말을 건넸다. 사람의 말이 고양이의 귀에 의미로 닿지는 않을지라도, 마음의 온기는 충분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 고양이는 내가 울타리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벗어날 때까지 계속 응얼거렸다. 마치 “오늘도 와 줘서 고마워요”, “당신이 있어 우리는 하루를 더 살아간답니다”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외로움은 언제나 거대한 사건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고요한 겨울 산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혼자라는 표정을 지으며 걷고 있었다. 그러나 고양이의 작은 인사가 그 표정을 바꾸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고, 나 또한 그 존재를 잊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만으로도 오늘 하루가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나는 새삼 깨달았다.


문득 어느 여름날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나무 그늘 아래 앉아 노래를 부르던 날, 그 고양이는 말없이 다가와 내 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람도 아닌 존재가 내 목소리를 듣고 곁을 지켜준 그날의 기억은, 뜻밖의 방식으로 나를 많이 위로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서로의 기척을 기억하게 되었고, 계절이 바뀌어도 그 인사는 잊히지 않고 있다.

나는 안다. 야생에서 들고양이들의 삶이 녹록지 않고, 내가 주는 사료가 그들의 구원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그러나 누군가의 겨울을 함께 건너기 위한 작은 보탬이 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관계의 수보다 깊이를 더 소중히 여긴다. 바쁜 약속보다는 마음이 닿는 장면 몇 개를 더 오래 붙잡고 싶어진다. 내게 만나는 광석골의 고양이들은 그런 장면의 중심에 있다. 나는 그들을 돌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들이 내 일상을 돌보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초겨울의 산은 내게 운동의 장소이자, ‘아직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조용한 자존의 증거가 되는 곳이다. 오늘 들려온 ‘야옹’은 감사의 인사였을 수도, 단순한 생의 신호였을 수도 있다. 무엇이든 좋다. 그 한마디면 초겨울의 냉기를 밀어내고, 내 마음 한켠에 따뜻한 불씨 하나를 남겼다.


결국 관계는 크고 거창한 말이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약속과 마주침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내일도, 또 다른 어느 날도 이 산길을 걸으며 그 불씨를 조심스레 지켜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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